플라스틱, 지중해 심해를 ‘보이지 않는 매립지’로 만든다

[ 비건뉴스 ] / 기사승인 : 2025-09-19 13:30:0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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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지중해 깊은 바닷속이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의 최종 종착지로 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표면은 맑아 보일지 몰라도, 바닷속 어둠의 공간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닐봉지와 포장재가 수세기 동안 쌓여가며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 하이파대학과 이스라엘 해양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최근 학술지 ‘Marine Pollution Bulletin(해양오염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중해 동부의 레반트 분지가 세계적으로 가장 오염된 심해 구역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저인망 조사를 통해 해저를 탐사한 결과, 발견된 쓰레기의 대부분이 비닐봉지와 포장재였으며, 이들이 수천 미터 아래 해저에 갇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이 단순히 해수면에 떠다니거나 해변에 쌓인다는 기존 인식을 넘어, 심해저까지 내려가 장기간 머물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조각을 범죄 증거물처럼 다루며 크기, 색상, 재질, 표면 상태, 부착물 등을 분석하는 ‘다중 지표 분석(multi-marker analysis)’ 방식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이 왜 가라앉았는지,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주요 발견 중 하나는 플라스틱의 재질과 제조 과정이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은 마트에서 흔히 쓰이는 폴리에틸렌 소재였는데, 원래는 물에 뜨지만 제조 과정에서 첨가되는 탄산칼슘(CaCO₃) 때문에 무게가 늘어나 해안 가까이에서 곧바로 가라앉는 경우가 많았다. 첨가물이 없는 플라스틱은 바다를 더 멀리 떠돌다가 결국 심해에 퇴적됐다. 수심 3천 피트(약 900m)가 넘는 레반트 분지는 자연적으로 플라스틱을 가두는 덫 역할을 하며, 미세 퇴적물과 압력이 이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보통은 미생물의 점액질인 바이오필름이 플라스틱을 무겁게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이 해역에서는 바이오필름이 잘 형성되지 않아 타르, 모래, 조개껍질 등이 대신 가라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플라스틱의 기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구진은 이집트,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인근 국가에서 발생한 육상 쓰레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해운 활동 역시 심해 구역의 오염에 기여하고 있었다. 반면 어업은 주요 요인이 아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엄격한 규제가 일정 부분 효과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해양연구소의 야엘 세갈 박사는 “수년간 해저 모니터링에서 높은 농도의 플라스틱을 기록해왔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번 연구로 플라스틱이 심해에 정착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동지중해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바다로, 다음 세대를 위해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해양 생태계에 장기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플라스틱 포장재는 생산이 쉽고 비용이 저렴하지만,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고 수백 년 동안 남아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진다. 이는 먹이망을 교란하고, 독성 물질을 해양에 퍼뜨리며,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심해 생물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리바탈 북만 교수는 “동지중해가 조용히 심해 매립지로 변하고 있다”며 “잠깐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수세기 동안 갇혀 깊은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체계적인 심해 조사 없이는 플라스틱 오염의 실제 규모를 과소평가하게 되고, 해양 관리 정책 역시 왜곡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해양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바다를 공유하는 이집트,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인근 국가들이 공동으로 모니터링, 정화, 예방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계속 축적될 것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심해 생태계가 조용히 질식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플라스틱 오염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플라스틱은 단순히 해변에 떠밀려오는 쓰레기가 아니라, 해류와 오염물질과 상호작용하며 보이지 않는 심해저에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제는 더 폭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다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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