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일보]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일본이라는 두 거대 이웃과 영원히 함께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사 속에서 한·중·일 3국이 진심으로 소통하고 호혜적으로 협력했던 ‘황금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특히 미·중 패권 전쟁의 격화와 대만 문제의 부상, 그리고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과거사 문제는 동북아의 외교 기상도를 시시각각 흐리게 만들고 있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제1원칙으로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 외교정책은,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국익 극대화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로 일본을 택해 셔틀 외교의 복원을 시도하고,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이끌어 내며, 외교적 공간을 확보한 것은 고무적인 성과다.
하지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의 도식마저 흔들리는 지금, 우리에게는 미·중 갈등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이고 새로운 협력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절실하다. 첨단 반도체나 AI 기술 협력이 미국의 견제로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필자는 그 해법을 ‘환경(Environment)’에서 찾고자 한다.
인간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상식을 좇는 본능이 있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자, 전 인류가 공감하는 대의명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중 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한다.
지금 중국은 과거 대한민국이 겪었던 고속 성장의 딜레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며 경제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지만, 그 대가로 심각한 수질 오염, 대기 오염, 폐기물 처리 문제라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이는 중국 정부에게도 체제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 한국의 환경 산업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2024년 2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공식 발표한 최신 기술수준평가 결과에 따르면, 직접적인 오염 정화와 생태계 회복을 다루는 ‘환경 보전 및 복원’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국(미국) 대비 81.1%로 평가되었다. 이는 76.3%에 머무른 중국을 4.8%포인트 앞서는 수치다. 특히 미세먼지 저감, 폐수 고도 처리 등 실질적인 오염 개선이 필요한 현장 기술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확실한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운영 노하우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양국의 ‘식문화 유사성’에 기반한 기술적 적합성이다. 서구와 달리 쌀과 국물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과 중국은 음식물 폐기물의 성상과 그에 따른 생활 하수의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 수분 함량이 높고 염분이 많은 이러한 폐기물 처리는 서구의 건식 처리 기술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반면, 한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처리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과거 일본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앞서던 시절, 일본의 환경 기술이 한국에 도입될 때 “볼트와 너트만 조금 조절하면 바로 쓸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국의 기술적 호환성은 높았다. 이제는 그 흐름이 바뀌었다. 한국의 환경 기술은 별다른 개조 없이도 중국 현장에 즉각 투입되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이른바 ‘맞춤형 솔루션’인 셈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우수한 환경 기술이 중국의 오염 개선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가 중국의 환경을 개선해 주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자원 순환 기술’을 공유하고, 반대급부로 중국의 풍부한 희소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상호 호혜적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안보 전략이 된다.
환경 분야에서의 성공적인 협력은, 양국 간 신뢰의 자산을 쌓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환경 오염 개선’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쌓인 신뢰는, 향후 다른 산업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튼튼한 교두보가 된다.
미·중 갈등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청정 산업(Clean Industry)’ 육성이라는 새로운 깃발 아래 경제 협력의 범위를 전방위로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환경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외교의 무기이자 협력의 언어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환경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삶의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나아가 두 나라가 함께 ‘글로벌 환경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국가의 책무를 다하고, 국익을 창출하며, 평화 공존의 토대까지 닦는 길. ‘K-환경 기술’이 그 중심에 서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