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와 '대홍수'...허지웅→황석희가 던진 건강한 질문 [장기자의 삐딱선]

[ MHN스포츠 ] / 기사승인 : 2025-12-24 07:10:0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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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 장민수 기자) 영화 '대홍수'가 공개 이후 혹평을 얻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가 허지웅과 번역가 황석희가 영화를 옹호하며 반박에 나섰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혐오의 시대,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합당한 지적이다.



영화 평론가 출신인 허지웅은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영화 '대홍수' 포스터 이미지와 함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최근 영화를 바라보는 일부 대중의 태도를 지적하며 "대홍수가 그렇게까지 매도돼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도파민을 시기 적절한 시점에 치솟게 만들지 못하는 컨텐츠를 저주한다. 더불어 권리라고 생각한다"며 "저주를 선택했다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논리를 갖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이야기가 조목조목 싫다고 세상 구석구석 외치고 싶은 사람들이 논리를 갖추는 광경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배달플랫폼에서 '우리 아기가 먹어야 하는데 내 기대와 달랐으니 너 XXX는 장사를 접어'라는 식의 리뷰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든 이들에 대한 응원의 말도 덧붙였다. 허지웅은 "당신에게 밥숟가락을 놓으라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하지만 당신이 고민한 시간의 천분의 일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힘을 내라"며 "당신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한다면, 언젠가 칭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황석희 번역가 역시 지난 23일 유사한 의견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









그는 '대홍수'에 대한 다양한 평을 언급하며 "몇 년 전부터 느끼는데 관객들 평이 점점 짜다. 그리고 평의 염도에 비례해 표현이 과격해진다"고 최근 흐름을 짚었다.



특히 그는 단순 혹평을 넘어서는 악의적 비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싫으면 싫은 거지 이럴 필요가 있나. 자기 표현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지 남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즘 관객은 영향력을 가진 이들에게 생각보다 영향을 정말 크게 받는다"며 "호평이든 혹평이든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선의 평을 보고 싶다. 저주가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의 취향을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게 만든 '대홍수'는 지난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공개 이후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국내 관객 반응은 대체로 혹평이다.



부실한 개연성과 얕은 서사, 애매한 메시지 등 수작으로 평가하기엔 아쉬운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SF적 상상력을 구현한 비주얼과 새로운 시도, 시의적절한 주제 등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실제로 이와 같은 부분을 지적하거나 칭찬하는 반응도 많지만, 대체로 비난이 만연하다. 극중 캐릭터의 답답함을 욕하는가 하면, 김병우 감독의 전작 '전지적 독자 시점' 흥행 실패를 언급하며 영화계 은퇴를 종용하기도 한다.



이는 허지웅과 황석희 두 사람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이다. 정당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 비난. 마치 누가 더 세게 욕하는지 대결이라도 하듯 창의적인 비난 문구가 쏟아진다.



그러면서 잠재적 관객의 관람 시도를 만류하고, 영화를 매장하기에 이른다. 다른 의견을 보인 이에게 '볼 줄 모른다'며 무시하기도 한다. 이는 비단 '대홍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혐오의 시대가 도래한 후, 영화뿐 아니라 대다수 콘텐츠가 이러한 비난의 홍수에 침수됐다.









개인의 상상력으로 탄생하는 영화이기에, 이를 보는 개개인의 시각도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명확한 공식과 정답을 도출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명작이 누군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고, 다수가 혹평하는 '망작'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작이 될 수 있다.



물론 기본도 갖추지 못한 채 인맥과 자본만으로 엉성한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본 관객 입장에서는 '속았다' 싶어 화가 날 만도 하다. 충분히 목소리 높여 비판할 만하며, 영화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처사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비난이 타인의 선택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될 터.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겠다.



자신을 만족시킬 새롭고 재밌는 영화의 탄생을 원한다면, 건강한 비판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 누가 알겠나. 망작인 줄 알았던 영화를 만든 감독이 훗날 거장이 되어 나의 인생작을 만들어 줄지도.



사진=MHN DB, 넷플릭스, 허지웅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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