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추진잠수함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건조하는 '투트랙'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그간 건조 장소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왔다.
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성공적인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한미 조선협력 추진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부승찬 의원(더블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한미 양국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투트랙 전략이 집중 논의됐다.
투트랙 전략의 핵심은 한미 양국 안보는 물론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한 방식이다.
미국은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 후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계획을 승인하면서 미국 필리조선소를 포함한 미국 내 조선소를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현지 핵추진잠수함 건조 여건을 감안하면 미국 현지 건조 방식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용선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전 국가안보실 방산담당관)은 이날 세미나 기조 발제를 통해 미국은 현재 연간 약 1.2척 수준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2054년 목표인 66척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필리조선소 활용을 통한 병행 건조가 미국 핵추진잠수함 건조 속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한국은 예정된 핵추진잠수함을 적기에 확보하면서 건조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윈-윈' 구조"라고 주장했다.
핵추진잠수함의 정비(MRO) 역량 강화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2023년 기준 미국 핵추진잠수함 가운데 약 33%인 16척이 정비 중이거나 정비를 기다리는 유휴 상태다. 이는 미 해군 조선소의 인력 부족과 시설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 수석전문위원은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한화 필리조선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국내 잠수함 건조 능력이 검증된 조선사의 외주 생산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핵심 원자로 시스템 및 전투체계는 미국의 기존 핵추진잠수함 건조 조선소에서 담당하고 필리조선소에서는 선체와 격실 블록 제작 및 조립과 같은 일반 선체 공정을 맡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 내 규제와 충돌하지 않고 단시간 내 협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원자력 전문가들은 필리조선소를 활용한 한미 병행 건조가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기술의 자립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동 건조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들이 설계·생산·시험·정비 등 전 단계에 투입되면서 핵심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축적될 수 있다는 것.
또 저농축우라늄 연료 등 한국형 모듈 개발 참여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 중장기적으로 핵추진잠수함 기술 및 핵연료 자립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부승찬 의원은 "핵추진잠수함 확보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우리나라 조선산업과 지역 경제의 성장이라는 방향성도 중요하다"며 "국내 건조냐 해외 건조냐 하는 이분법적 틀에서 탈피해 가장 합리적인 건조 방안을 찾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미는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1500억 달러(한화 약 221조원)를 투입키로 했다. 1500억 달러는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 생산능력 확대 등에 투입된다.
최 수석전문위원은 "마스가 프로젝트는 군함 및 상선과 핵추진잠수함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같이 진행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능력 복원은 미국 내 예산 투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즉 동맹국 한국의 외부 생산 능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미 해군은 현재 운용 중인 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장착되는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14척(오하이오급)을 대체하기 위해 컬럼비아급 SSBN 12척 추가 건조를 진행 중이다. 이 중 2척은 지난 2021년과 2024년 각각 발주했고,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추가로 10척을 발주할 계획이다.
미 해군은 퇴역하는 잠수함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 2054년까지 재래식 미사일 및 어뢰 등을 탑재한 다목적 공격용 핵추진잠수함을 총 59척을 건조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연간 SSBN 1척과 SSN 2척을 동시에 건조해야 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연간 건조 능력은 1.2척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에는 현재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가능한 민간 조선소가 2개뿐이고,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어 미국 단독 생산만으로는 미군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한계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재 미국의 자체 핵추진잠수함 건조 역량만으로는 최악의 경우 2054년 SSN이 38척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했다.
이와 관련, 방사청 한국형잠수함사업단 출신인 류성곤 에스앤에스이앤지 상무는 “국내 업체가 인수한 미국 조선소 또는 국내 조선소에서 미국 핵추진잠수함을 포함한 미국 함정 건조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마스가 프로젝트를 활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