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을 재평가한다 (2024. 2. 26)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8 10:17:5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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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재평가한다

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 시사평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16일만인 지난 2월 17일 현재 관람객이 53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는 관련 기록물과 관계 인사 인터뷰를 통하여 그간 이 대통령에 관하여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 잡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학창시절 이 대통령 하면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독재자’와 같은 부정적 면만 배웠지 긍정적 이야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러면 이승만은 과연 부패한 독재자인가?

무엇보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의 최대업적이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어떠할지는 북한이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필자가 ‘선택’이라고 하였지만,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조선공산당이 소련의 지시를 받아 공산정권 수립에 매진하는 등 해방 후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기적 같은 성공스토리다. 일각에서는 이승만을 남북분단의 원흉이라고 비난하지만, 김구 선생이 남북 단일정부 수립을 논의한다며 방북한 48년 4월에는 이미 북한에는 김일성이 이끄는 소련의 괴뢰정권이 수립되어 있었다. 김구가 주장한 대로 김일성과의 협상을 통한 남북 단일정부 수립을 추진하였다면, 지금 한반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 존재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한미동맹을 통하여 국가 안위를 확보하고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김덕영 감독의 말처럼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릴 레일을 깐 것이다. 미국이 휴전을 서두르자 이승만은 이 상태에서 휴전할 경우 제2의 남침은 불 보듯 뻔하다며 휴전 반대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포로교환 문제가 휴전협상의 핵심의제로 되어 있을 때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한 그의 단호함과 배짱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격분하였지만, 결국 이 대통령의 휴전 동의를 받기 위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군 주둔, 군사 및 경제원조를 약속하였다. 침략을 당한 약소국 대통령이 벼랑 끝 전술로 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안보와 경제지원을 약속받는 외교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승만은 일찍부터 국제정세를 읽는 혜안을 갖고 외교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었다. 52년 1월 발표한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 선포)이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선제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52년 4월 28일로 예정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시 일본 선박의 대외진출을 제한하던 ‘맥아더 라인’이 철폐될 것을 예견하고, 45년 트루만 선언 이후 중남미 제국을 필두로 영해 바깥 수역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하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추세를 읽었기 때문이다.

일본 강점기 시절, 그는 일본을 무력으로 격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외교를 통한 광복에 매진하였다. 미국 정부에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고, 제네바 국제연맹에 가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미 군정 시절에는 정부 수립에 대한 유엔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한국은 유엔 감시 하 선거를 실시하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내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받았다.

이승만을 독재자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는 뼛속까지 자유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4.19 혁명이 일어난 것도 결국 학교에서 서구 민주주의를 배웠기 때문이다. 어느 독재자가 학교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치는가. 서울대 병원에서 총탄에 쓰러진 학생을 어루만지며 “내가 맞아야 할 총탄을 이 젊은이가 맞았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은 이승만의 진솔한 참모습을 보여 준다.

어떤 인물을 평할 때 그 시대 배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승만이 이끈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 문맹률 80%인 최빈국이자 신생 독립국이었다. 21세기 지금 최빈국 중에서 1950년대 대한민국 수준의 민주주의라도 실시하는 나라가 있는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3년간의 전쟁까지 치른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누구 덕분인가? 우리 현대사에서 이 화두에 답이 될 수 있을 만한 인물을 한번 떠 올려 보기 바란다.

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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