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시스템 공천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04 15:00:36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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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여야 불문 시스템 공천이란 말을 간판처럼 내건다. 앞뒤 상황을 살피고 그 취지나 의도로 짐작한다면, 사천이란 비난을 피하고자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시스템 공천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공천에 앞서 미리 조건과 공식을 마련해두고 그에 맞춰 불편부당하게 공천을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공천이라면 최악은 면할는지 몰라도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시스템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쓰는 개념으로 통상 체계, 조직, 제도로 번역된다. 여러 하위 구성요소들이 공동 목표를 위해 각자 커버하는 기능을 갖추어 상호 연결된 상위 수준의 집합체, 내외부 경계로 구분된 실체의 내부에서 외부로 입력이 이루어지면 일정한 프로세스에 따라 출력을 내놓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구조, 일정한 원칙이나 목표를 갖고서 현실이 그러하도록 배치 및 배열된 질서 등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상호작용하거나 상호의존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지만, 전체적으론 하나의 통일된 집합체를 이룬 것이 시스템이다. 정치·사회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복잡한 정치·사회적 체계의 맥락에서 그 구조와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들의 집합체를 일컫는다. 시스템이란 말을 일상어처럼 쉽게 쓰고 자주 듣는 관계로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렇게 만만한 용어는 아니다.

시스템의 의미를 돌아보고 나면, 공식에 넣어 답을 내는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시스템 공천은 아니다. 개체의 성향과 능력뿐만 아니라 개체 간의 유기적 상호 관계, 전체와의 조화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시스템 공천이 된다. 단지 사감이라든지 개인적 연줄, 당파성을 배제한 객관적 공천을 강조하다 보면, 피가 통하지 않는 동맥경화 공천, 이도 저도 아닌 아무런 개성도 없는 두루뭉술 공천, 전문가들이 배제된 무색무취한 맹탕 공천 등으로 흘러가기 쉽다.

현실적으로 행해지는 시스템 공천은 외형상 반듯한 공천 기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공천신청자를 입력시켜 공천적임자를 출력시키는 구조인 듯하다. 공천 기계의 내부 장치가 공명정대하게 설계돼 있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 터다. 그마저 편법과 술수로 위장된 채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된다면 시스템 공천은 형해화된 박제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공천을 실행할 선한 의지가 있다면 허우대나 포장이 아니라 실질적 알맹이를 중시해야 한다. 사감, 연줄, 당파 등은 의사결정과 판단 과정에서 사상해야 할 허울일 뿐이고 반드시 배제해야 할 변수는 아니다. 시스템 공천의 진정한 요체는 어느 누가 결정하고 몇 명이 합의하느냐가 아니고, 그 결과물이 얼마나 공정하고 시스템적으로 구성됐는가다.

국민의 대표로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는지, 전체로서의 시너지가 최대로 될 수 있는 조합인지 등을 잘 감안해, 양심에 따라 진솔하게 판단하고 사심 없이 결정하면 그게 바로 시스템 공천이다. 꿩 잡는 매가 되면 금상첨화다. 누가 실세인가, 가점이나 감점이 어떠하냐는 작은 디테일일 뿐이다. 그 결과가 합당한 시스템적 접근의 출력으로 수긍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다. 사람을 보는 안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에 여야 모두 국민의 눈을 잘 의식해야 할 것이다.

오철환 (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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