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국제뉴스) 구정욱 기자 = 한평생 교육과 차 문화의 계승 발전에 이바지한 아인(亞人) 박종한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이 진주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아인 박종한 선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박종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항일단체 반진단을 결성해 항일운동을 주도했고, 대아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오민교육(五民敎育) 철학을 실천했으며, 차의 날 제정과 한국오성다도회 결성 등으로 차 문화의 계승 발전에 이바지했다. 민학회 결성, 남명제 창설 등으로 조선시대 대표적 실천유학자 남명(南冥)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을 현대 사학 정신의 요체로 일으켜 세웠다.
▶최남선의 조선역사 읽고 항일단체 ‘반진단’ 조직
박종한 선생은 교육가이자 차문화 운동가이다. 아인(亞人)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밀양으로 규정공파이다. 조부는 대제학을 지낸 박충원의 14세손인 하천(荷泉) 박병집이다.
부친 만암(晩巖) 박채규와 모친 능성 구 씨 사이에서 4남 5녀 형제 중 차남으로 1925년 4월 8일 경남 삼천포 동리 72번지에서 태어났다.
박종한 선생은 삼천포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진주로 이사해, 현재의 진주초등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와서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1943년 4월 진주공립중학교(현재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최남선의 조선역사를 읽고 ‘반진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했다.
진주공립중학교 졸업 후 진주 길야(吉野)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44년 11월 반진단원 9명과 일본의 주요 거점인 부산항 시설 폭파 계획을 세우다가 적발돼 부산형무소에 투옥됐다가 광복으로 풀려났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상대에 입학했다. 서울 상대 4학년을 다니다가 한국전쟁이 터져서 진주에 내려와 생활하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학업을 포기했다. 이후 조국의 통일과 자유는 아시아의 독립과 자유에 있다는 평소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1954년 2월 23일 재단법인 하천학원을 설립하였다. 하천은 아인의 조부 박병집 공의 호이다.
▶유산 임야 50만 평을 기본 재산으로 대아고 설립
1996년 대아고등학교 개교 30주년을 맞이한 당시 아인 선생은 “해방이 되고 곧 분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인재의 빈곤이 눈에 보였습니다. 일본처럼 교육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세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겠다고 결심하고 반진단 친구 5명이 모였습니다. ‘학교를 세우자’고 결의하고 아버지의 유산 임야 50만 평을 기본 재산으로 학교를 설립했습니다.”라고 말했다.
1966년 3월 대아고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평소의 지론인 오민교육사상을 집대성한 오민교육을 1975년 발간했다. 오민이란 중국 손문의 삼민주의의 구국이념과 남명 조식 선생의 반구실천(反軀實踐) 교육사상을 참조해 박종한 선생이 체계화한 정신사상이자 전인교육 원리이다. 즉, 민성(民性), 민족(民族), 민본(民本), 민생(民生), 민복(民福)이다.
박종한 선생이 설립한 대아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인성교육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아고는 개교 이듬해인 1967년 3월 국내 최초로 생활지도관 ‘화랑숙’을 설립해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제고하는 한편 인성교육·국혼교육의 기반을 다졌다.
이 해에 진주성 내 창렬사 충의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민·관·군의 숭고한 넋을 기리도록 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바른 국가관을 형성해 나가도록 했다. 이어 1968년에는 처음으로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197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인성교육인 다도교육을 시작했다.
▶남명선생의 경의정신을 사학의 건학 정신에 심다
박종한 선생은 1977년 8월 10일 당시 경남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으로서 경남학생체육관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게 맑은 차를 올리면서, 400여 년 동안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중기 위대한 실천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을 기리는 추모제를 올렸다. 그리고 제1회 남명제를 창설했다.

이날 경남학생체육관에서 박종한 선생을 비롯해 고려대 김충렬 교수와 동아대 정중환 박사가 연사로 참석해 남명선생 학술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남명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대아고등학교에서는 이미 남명 선생의 정신에 대한 실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남명의 경의정신이 올바른 사학의 건학 정신에 심어져야 한다고 보고, 남명을 연구해 학생 교육에 접목시키고 남명학 연구를 위해 1978년 남명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박종한 선생은 한국 근대 차문화 운동의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1970년 전국 최초로 차 전시회를 열었고 1978년 12월에는 효당(曉堂) 최범술 선생과 사단법인 한국차인회를 창설했다. 박종한 선생은 초대 부회장과 고문을 맡았다. 이어 선생은 초의선사가 기거한 일지암을 답사한 뒤 일지암을 재건하는 데 힘을 모았다.
1981년에는 진주 촉석루에서 차의 날 제정과 차의 날 선언문을 작성했는데 이때 박종한 선생은 진주차인회 회장이었다. 오늘날 기념하는 ‘차의 날’은 이때 제정된 것이다. 박종한 선생이 한국 차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에 대한 사료는 수없이 많다. 아인도방을 스스로 운영하면서 전국 차인에게 ‘오성다도’를 교육했다.
1989년 5월 한국차인연합회로부터 사단법인 차인회 창설 공로상을 받았고 1998년 7월에는 한국다도협회로부터 ‘차문화 공로상’을 받았으며 그해 10월에는 초의문화재단으로부터 ‘초의상’을 수상했다. 2000년 한국차인연합회로부터 ‘명원차 문화 공로상’을 수상함으로써 박종한 선생이 차문화 발전에 얼마나 넓고 깊게 기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진주시민상 수상으로 필생의 업적 조명받아
박종한 선생은 2012년 5월 7일 별세했는데, 진주시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13년 10월 10일 진주시민의 날에 박종한 선생에게 진주시민상을 추서했다. 당시 진주시는 박종한 선생에 대해 “故 아인 박종한 선생은 항일운동, 대아중·고등학교 설립과 명문학교 육성, 한국 근대 차문화 운동의 선구자, 남명제 창설 등의 업적으로 진주시의 명예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인 박종한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5월 17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GNU컨벤션센터 대강당 일원에서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프로그램은 헌다례, 아인 학술발표회 및 영상 상영, 아인 관련 작품 전시(다기, 차, 서, 화, 서각 등), 학술대회 자료집 발간을 진행한다. 추진위는 향후 ‘오성다도’ 책자 발간, 아인 박종한 선생 흉상 제작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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