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발효와 산장법으로 완성한 청명주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05 14:28:39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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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중에는 날씨가 추운 겨울에 빚는 술이 많다. 저온에서 발효하면 발효기간은 길어지지만 맛과 향은 훨씬 풍부해진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우리술의 발효온도가 25℃라고 하는 것은 대량생산을 하는 상업양조에서 단기간에 많은 술을 빚는데 적당한 온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냉방시설이 잘 되어있어 계절에 별 영향을 받지 않지만 삼양주(三釀酒)도 추운 겨울에 빚었다. 술을 몇 번 빚어 완성시키느냐는 방법에 따라 나눈 것이 삼양주, 이양주, 단양주다. 삼양주는 밑술 한 번과 두 번의 덧술을 해서 한 달가량 발효시키는 술이다. 겨울에 빚다보니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를 시킨 셈이다.

반면 단양주는 여름에 빚었다. 발효온도도 25~28℃로 높아 5~7일 정도면 발효가 끝난다. 단양주는 걸러서 바로 마시는 술이고 삼양주는 저온장기발효로 맛과 향이 뛰어나기 때문에 맑은술로 마시는 고급술이었다.

얼마 전에 언급한 바 있는 삼해주(三亥酒)와 삼오주(三午酒)도 한 겨울에 빚는 저온장기발효 술이고 청명(淸明)에 마시는 청명주(淸明酒)도 마찬가지다.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淸明)은 춘분과 곡우 사이다. 음력으로는 3월,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으로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다. 올해는 4월 4일이 청명이고, 하루 뒤인 5일이 한식이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이므로 하루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했다. 예전에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본격 농사를 시작하는 청명에 마시거나 한식 제사 혹은 성묘에 쓰는 술이 바로 청명주다.

‘술 만드는 법’이란 문헌을 보면 청명주는 2~3월에는 한 달 만에 술을 뜨고 4월에는 21일 만에 술을 뜬다고 했다. 가장 추운 1월이면 술 뜨는 기간이 더 길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청명주의 인기가 뜨겁다.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이 술을 찾는 사람이 많다. 시판되고 있는 대표적인 청명주는 두 종류. 충북무형문화재 명인이 만드는 ‘중원당 청명주’와 누룩명인이 만드는 ‘한영석 청명주’다.

물론 요즘 청명주는 청명과 한식에만 마시는 술이 아니다. 연중 생산되기 때문이다. 청명주가 사계절 내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과일향을 내는 깔끔한 산미와 단맛에 아주 맑은 술색 때문이다. 청명주는 찹쌀가루로 죽을 쑤어 밑술을 하고 찹쌀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 이양주다. 찹쌀로만 두 번에 걸쳐 술을 빚기 때문에 맛이 감미롭고 깔끔한 신맛을 보이며 술빛 또한 맑고 깨끗한 게 특징이다.

2022년 4월 첫 출시를 하자마자 SNS에서 이를 구하기 위해 난리가 난 술이 ‘한영석 청명주’였다. 지난해 9월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 한영석 대표를 만나 청명주 맛과 향의 비결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한영석 대표가 귀띔해준 비결이 저온발효와 산장법(酸漿法)이었다.

산장법은 고두밥을 찌기 전에 쌀을 물속에 오랫동안 불리는 것을 말한다. 여름에는 3일, 겨울에는 거의 10일 정도 불린다. 이렇게 오랫동안 쌀을 불리면 쌀의 수용성물질이 빠져나가면서 효모의 활성도를 낮출 수 있고 깔끔한 신맛을 내게 된다. 저온발효도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 발효실 온도는 13.5℃를 표시하고 있었다.

요즘 전통주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꼭 마셔보라고 권하는 술 중 하나도 청명주다. 쌀과 물, 누룩만으로 빚는 술임에도 와인보다 깔끔한 산미와 술빛, 그리고 과일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 바꿀 수 있는 술이기도 하다. 다행히 중원당 청명주나 한영석 청명주 모두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이번 설에는 전통누룩으로 전통방식으로 만든 청명주를 구해 차례주로도 쓰고 시음도 해보길 권한다. 전통주의 매력에 바로 빠져들 수 있는 술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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