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월을 견딘 사유, 오늘을 비추다’
현대 사회는 급변하며 가치관의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옛 책에서 새로운 기준을 찾게 마련이다. 2021년 1월경 학계와 문화재계가 주목한 고전이 있다. 1415년 명나라 영락제 때 중국 황실에서 간행한 목판본 ‘《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가 그것이다. 서울의 한 고서 경매전에서 5천만 원에 출품된 이 작품은 열띤 경합 끝에 최종 1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성리학 해설서가 아니다. 명나라가 주자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편찬한 대규모 기획물이다. 전 70권 30책(冊) 완질본이 ‘백면지(白綿紙, 조선에서 제작하여 명나라에 외교적 선물로 보낸 최고급 닥종이)’에 인쇄되어 600년 넘게 보존되어 왔으며, 간행 당시 표지와 제첨(題籤, 책 표지에 붙이는 제목표)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백면지는 일반 종이보다 질기고 보존성이 뛰어나 귀중한 문헌에만 사용되었으며, 600년 전 제첨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15세기 동아시아 지성사와 인쇄 문화의 귀중한 증언이다. 요약하면 중국 황실 간행 목판본 《성리대전서》는 한 시대의 사상·제도·기술이 집약된 총체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 조선 오백 년의 설계도 : 이(理)와 기(氣)
《성리대전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 오백 년의 설계도였던 '성리학'의 본질을 파악하여야 한다. 성리학은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집대성된 유학으로, 만물의 존재 이유와 인간 도덕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 체계이다.
성리학의 골간은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理)’는 모든 존재와 행위의 근본 원리이자 도덕적 질서의 준거이다. ‘기(氣)’는 이 원리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변화와 움직임의 힘이다. 즉, 존재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형질과 현상인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 두 개념을 둘러싼 해석이 두 거대한 학맥으로 나뉘었다.

◉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룬 영남학파는 이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며 도덕 원칙과 자기 수양을 중시했다. 이황은 사단칠정 논쟁에서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현된 것(理發), 칠정(七情)은 기(氣)가 발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선조에게 올리며 다음과 같이 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맹자(孟子)의 말에, '마음의 본분은 생각(思)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之.]‘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하여 또 이르기를, '생각(思)하면 명철(睿)해지고, 명철해지면 성인이 된다.[思曰睿, 睿作聖.]’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은 방촌(方寸)에 갖추어져 있으면서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영(靈)하며, 이치는 그림과 글 속에 드러나 있으면서 지극히 뚜렷하고 지극히 진실하니, 지극히 허령한 마음을 가지고 지극히 뚜렷하고 진실된 이치를 구한다면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내용은 《성리대전서》의 핵심 사상인 궁리(窮理)와 경(敬)을 조선 현실에 적용한 것이었다.
◉ 율곡 이이(李珥)를 종장(宗匠, 학문 분야의 대가)으로 한 기호학파는 이와 기의 불가분성을 내세우며, 도덕 원리가 현실에 맞게 조화되고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이는 이(理)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기(氣)를 타야 발현된다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했다. 그는 학문의 목적이 공리공론에 머물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실제적인 정치{실천정치(實踐政治)}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이는 《만언봉사(萬言封事)》를 통해 국가의 모든 병통이 시무(時務, 당면한 현실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데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를 바로잡는 것은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력히 역설했다. 그는 구체적인 토지 개혁과 군역 제도 개선을 주장하며, 성리학적 이상이 현실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두 흐름은 '수신(修身)'의 내적 완성과 '제가·치국(齊家治國)'의 실천적 사회 참여라는 축 위에서 조선 성리학의 깊이와 다양성을 구성했다. 《성리대전서》는 양 학통 모두에 중요한 원전이면서도, 각기 다른 사상적 토대 위에서 해석되고 수용되었다.

◆ 정조 개혁의 서가 : 장인 김시묵의 장서
중국 황실 간행 목판본 《성리대전서》는 서문 첫 장 가운데 부분에 ‘김씨세장(金氏世藏)’이라는 인장이 날인되어 있으며, 각 책 권수제면(卷首題面)마다 '김시묵인(金時默印)'과 '이신(而愼)'이라는 ‘장서인(藏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정조{즉위 전 세손}의 장인(丈人)인 김시묵(金時默, 1722~1772)의 소장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이신(而愼)'은 김시묵의 자(字)이다. 이 붉은 인장은 본서(本書)가 김시묵의 서가에서 오랜 시간 간직되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김시묵은 영조 시대의 핵심 관료이자 도덕과 공정을 중시한 현실적 유학자였다. 그는 비변사 당상을 역임하며 국방과 민생 문제에 깊이 관여했고, 청렴결백한 관료로 명망이 높았다. 김시묵은 1772년에 작고하였으며, 이후 1776년에 사위인 세손이 정조로 즉위하였다. 정조는 즉위 후 장인인 김시묵을 최고로 예우하였으며, 영의정·청원부원군에 추증하였다. 이는 김시묵이 평소 청렴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처신을 통해 왕실의 신뢰를 받았으며, 강직하고 공명정대한 처신을 통해 학문적 권위까지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김시묵의 서가에 중국 황실본 《성리대전서》 완질본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성리학적 원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닌 실천적 정치 기준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정조는 규장각(奎章閣) 설치·신분제 개혁·경학 진흥 등 다양한 개혁 정책을 통해 성리학적 이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했다. 특히 규장각에 조선본 《성리대전서》를 비롯한 성리학 원전을 대거 간행하여 비치하고, 검서관 제도를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인재 등용을 실천했다. 《성리대전서》는 이러한 정책과 사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적 토대였다.

◆ 지적 유산의 수호 : 해외 유출 대비책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중국 간행본을 일회적 소유물이 아닌 학문 전통의 계승으로 받아들였다. 장서인의 존재는 이 문헌이 우리 지성사의 일부임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고문헌(古文獻)과 관찬본(官撰本, 국가 기관이 편찬한 책)들이 경매를 통해 해외로 유출되는 위험이 상존한다. 관찬본은 단순한 개인 소장본을 넘어 국가의 통치 철학과 지식이 집약된 '공적 지식 유산'의 상징이기에 그 유출은 특히 심각한 문제이다.
나아가, 중국에서 간행된 책이라 할지라도 김시묵과 같은 당대 최고 지식인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면, 이는 이미 조선 지성사의 일부로 편입된 '한국의 지적 유산'이다. 하물며 조선의 관인(官印)이 날인되어 공적 기록임을 명시한 경우는 (중국본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와 보존의 시급성을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고문헌의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과거 조선 왕조 의궤(儀軌)가 프랑스나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오랜 외교 노력 끝에야 환수되었던 사례는, 지적 유산의 영구적 보존이 곧 국력임을 증명한다. 실제로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24만 점이 넘으며, 환수율은 5%대에 불과하다. 유출은 문화적 단절을 의미한다. 국가와 학계는 협력하여 이러한 문헌을 ’지식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국제적 반출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조선 지식인의 장서인이 날인된 귀중본에 대해서는 국·공립 박물관 및 기관이 '한국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경매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내로 확보하는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처럼 조선 지식인의 손을 거쳐 내려온 귀중한 원전들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계승의 의의는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 21세기 리더십 : 성찰과 공정의 기준
《성리대전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바로 세우고, 그 질서로 세상을 밝히라."
성리학이 강조하는 자기 수양과 공적 책임은 오늘날 윤리적 리더십(Ethical Leadership)·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 등 현대의 중요한 리더십 이론과 깊이 통한다.
(1) 성찰에서 시작하는 리더십: '수신(修身)'의 현대적 구현
성리학의 '수신(修身)'은 자기반성과 내적 성장을 통해 리더십의 토대를 다지는 과정이다. 이는 현대 윤리적 리더십의 핵심 요소인 '자아 자각(self-awareness)'과 일치한다. <이황의 이발(理發) 사상과 통하는, 내면의 순수성을 지키는 리더십이다.>
특히 성리학의 '경(敬)'은 마음의 흐트러짐을 잡아 고요하고 일관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서양 철학의 의무론(Deontology)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행위의 일관성과 목표 지향성(Purpose-driven)과도 깊이 통한다.
정조가 경연(經筵)에서 신하들과 《대학(大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가르침을 깊이 되새겼듯이{《홍재전서》 권76}, 고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공적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묻는다. 특히 정치적 대립과 사적 이익 추구가 공적 윤리를 침해하는 이 시대에, 고전은 리더가 의사결정 전에 스스로에게 "나의 사적 이익이 판단을 흐리지는 않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러한 자기 성찰과 책임 인정은 시대를 초월하는 리더십의 기본 자질이다.
일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스타벅스의 전(前) CEO 하워드 슐츠는 회사의 위기가 지나친 확장으로 인해 '커피의 본질'을 잃은 데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전 세계 모든 매장을 일시적으로 닫고 직원들에게 재교육(Re-training)을 실시하며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이는 리더가 자신의 판단을 성찰하고 조직의 정신을 다시 세우는 '수신'의 보편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 공정성의 제도화: '제가치국(齊家治國)'의 질서 구축
성리학은 개인의 도덕성이 반드시 제도와 조직에 구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理)는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통해 가정과 국가에 질서를 세우는 것과 같다.
정조의 규장각 검서관 제도가 신분을 초월해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 것이 공정의 제도화였다면, 현대 기업의 블라인드 채용이나 ESG 경영의 사회적 책임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 제시하는 실천적 정치의 구현이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가 도입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문화는 직급과 배경을 넘어 누구나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이(理)의 보편성을 조직 문화로 구현하며 공정한 질서를 구축한 사례로 볼 수 있다.

(3) 균형의 지혜와 공동체의 책임: '평천하(平天下)'를 향하여
성리학은 변하지 않는 원칙(理)과 변화하는 현실(氣)의 균형을 요구하며, 그 최종 목표를 '평천하(平天下)'-공동체 전체의 안녕-에 두고 있다.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환경 보호라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궁극적으로 회사 지분을 환경 단체에 기부한 행위는 '이(理)와 기(氣)의 조화'와 '공동체적 책임'을 극대화한 사례이다. 이처럼 리더는 단기 이익보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가 코로나19 팬데믹·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위기 때 공감과 연대를 강조하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정책 역시 개인의 권력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회복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이상과 통하는 지점이다.
600년 전의 《성리대전서》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이 고전은 우리 시대 리더들에게 '성찰{修身}'을 통해 그 기준을 확보하고, '공정{齊家治國}'을 통해 그 혼란을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