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기자] 출근길 도로 한복판이 갑자기 꺼지고, 보행자가 걷던 인도가 순식간에 함몰된다. 최근 몇 년간 반복돼 온 도심 싱크홀 사고는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잠시 잊혔을 뿐, 도심 지하에서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로 침하, 보도블록 함몰, 공사장 인근 지반 균열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대부분은 상·하수관 노후화나 지하 굴착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지반 약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사고 발생 전까지 외부에서 감지할 수 있는 뚜렷한 이상 징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발생했고, 대응은 늘 사후 복구에 머물렀다.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현행 지하안전 관리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착공 이후 지하안전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공사 진행 과정에서 지반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측하거나 이상 징후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는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지반침하는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미세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문제가 발생한 뒤 확인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어,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국회에서는 지하 안전 관리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손명수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시을)은 26일,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지하공사 현장을 ‘사후 점검 대상’이 아닌 ‘상시 감시 대상’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지하안전평가 대상 사업에 대해 착공 시점부터 완공 시점까지 자동화계측기를 활용해 지반 변화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지반 변위·침하·균열 등 이상 징후가 감지될 경우 즉시 현장 점검과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안전관리체계의 구축·운영 의무를 신설했다.
손 의원은 “지반침하 사고는 발생 이후 대응만으로는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며 “공사 전 과정에서 지반 상태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국민 안전을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손 의원을 포함해 김준혁, 윤종군, 이성윤, 이용우, 문정복, 정준호, 문금주, 최혁진, 황명선, 한준호, 민병덕, 정일영, 홍기원 의원 등 총 14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를 개별 사고가 아닌 구조적 안전 문제로 보고,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회의 공감대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이번 개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도심 안전을 더 이상 현장 관리자의 주의나 ‘운’에 맡길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지하철, 지하도로, 대형 건축물, 노후 관로가 중첩돼 있어 지반 위험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계측을 통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가 제도화될 경우, 지하 개발은 ‘사고 발생 후 복구’ 중심에서 ‘위험 감지 후 차단’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도심 인프라 관리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를 줄이기 위한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이를 의무화하고 지속시키는 제도”라며 “이번 개정안은 지하 안전을 우연이 아닌 시스템으로 관리하겠다는 첫 단계”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