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뉴스) 이병훈 기자 = 명도소송이 임대차 시장의 주요 분쟁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이 발표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명도소송(건물인도·철거) 접수는 3만5593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명도 분쟁은 예전처럼 단순한 ‘퇴거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이 수치가 임대차 갈등이 일정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계약 종료 시점에 대한 해석 차이, 보증금 정산 갈등, 상가 폐업과 권리금 회수 문제 등이 한꺼번에 얽혀 복합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명도소송은 더 이상 집을 비워달라는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며 “최근 사건을 보면 계약 구조의 복잡성, 시장의 불안정성, 경제 상황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점유 이전 문제다. 임차인이 제3자에게 점유를 넘기면서 소송 절차가 복잡해지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임대인은 기존 임차인과의 분쟁 해결을 기대하지만, 점유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순간 소송 상대가 바뀌거나 새로운 법적 쟁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임대인이 명도소송 전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먼저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상가 임대차에서는 폐업 증가와 권리금 회수 문제가 명도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폐업을 앞둔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가 어려울 경우 명도 요구에 쉽게 응하기 어렵고, 임대인은 임대차 관계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해 충돌이 장기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엄 변호사는 “폐업이 늘어난 시기에는 명도 갈등이 동시에 분출되는 경향이 있다”며 “임대인·임차인 모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거 분야에서도 갈등의 성격은 비슷하다. 역전세 상황에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임차인의 퇴거가 지연되거나,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는 시점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명도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 대립이 커져 소송 이전 단계에서부터 협상이 완전히 막히는 일도 적지 않다.
엄 변호사는 “명도 분쟁의 원인은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차임연체인 경우가 많지만, 이외에도 사실상 ‘법적 절차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임대인은 계약 만료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반면, 임차인은 갱신요구권 행사 가능성을 근거로 점유를 유지하려 하면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엄 변호사는 “퇴거 통보, 보증금 정산, 계약 종료 협의 등은 서면으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분쟁이 크게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는 분쟁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이다. 명도소송은 통상 몇 달 이상 걸리며, 강제집행 단계에 들어가면 비용이 더 늘어난다. 상가의 경우 영업 손실, 시설 철거 비용, 인테리어 비용 문제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넓게 퍼진다. 엄 변호사는 “명도 문제는 누군가의 삶의 기반이 움직이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며 “분쟁이 발생하면 법적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고 초기 대응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이 앞으로도 불안정할 가능성이 있어 명도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금리 부담, 상가 공실 문제, 임대료 조정 압력, 보증금 반환 여력 등 구조적 요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 변호사는 “명도소송이 많다는 것은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긴장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라며 “임대인·임차인 모두 분쟁 예방을 위한 조기 협의와 명확한 문서 정리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