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운동 이후, 풍경의 변화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22 13:07:3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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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백성의 그림이란 뜻으로 민화의 ‘민’자는 우리의 마음을 늘 설레게 했다. 민화, 민속, 민요 가운데 민화라는 이름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을 보면, 마냥 감성적으로 좋아만 하기 힘든 용어이다. 민화는 신분사회에서 생성된 불공평한 관계를 개선하여 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적 이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대학에서 풍물패들이 대학민주화 시위의 선두잡이로 나서고 마당극이나 탈춤이 길쓸기를 하며 광기를 신명잡이로 엮어내었다.

유난히 민족주의 문화 유산에 대한 학술적 담론이 강화되고 이에 맞추어 학생들 사이에는 모임 모꼬지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이른 봄 대학 캠퍼스는 사물패 길잡이 놀이에 놀라서 겨울잠에서 깬 홍매화가 활짝 피어났다.

‘민’이라는 이름의 문화예술이 꿈틀거리며 ‘민학회’라는 사회단체들이 격조를 갖춘 옛문화예술을 직접 답사하는 열풍도 함께 하였다. 이 ‘민’자 이름은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 유럽과 일본의 지성계를 훱쓸었던 일종의 사회주의의 아데올로기적 산물이다.

특히 전통 문화의 범주를 지배와 피자배라는 계급을 기준으로 양분한 민화, 민요, 민속이라는 소위 ‘민’자이름을 달고 있는 계급적 분류 방법을 이제 재론해 볼 단계가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여항이나 하층민들이 제작하고 아꼈던 예술에 대한 우호적 눈길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상화하는데서 탈피하지는 못했다. 현재 민화를 계승한 작가들은 전혀 민과 계급적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다. 봉건적인 신분사회도 아닌데다 미술, 음악, 풍속 등 이념이 거의 배제된 현대에는 다른 용어로 대체되어야 할 운명의 임계점이 아닐까?

유럽의 박물관에서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민속, 민족학 등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하는 추세다. 비엔나민족학박물관이 비엔나세계박물관으로, 함브르크민족학박물관이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뮌헨민족학박물관은 뮌헨오대륙박물으로 바뀌었다. 계급적 갈등 시대에 나타난 용어를 굳이 지금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미술의 하위 장르 구분에 일체성을 흔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의 토대 위에 나타난 민족학이란 용어가 사실은 대단히 배타적이며 폐쇄적이다. 최근 한국전통문화예술연구원에서 “한국화의 정체성-채색문화의 위상 재정립”이란 경주포럼에서도 민화라는 용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화 이후 그것을 대체할 용어는 무엇일까? 정종미교수는 ‘한국화’, 윤범모 교수는 ‘채색화’, 최옥경 교수는 ‘장식화’라 부르자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에 윤진영 선생은 기존 민화를 현대의 실정에 맞게 다시 정의해서 사용하자고도 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정병모 교수는 "한국의 채색화 -궁중회화와 민화의 세계"란 도록을 내면서 변화의 국면임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국 미학은 본격적으로는 1970년대에서 식민주의 예속에 대한 엔티로 민족주의라는 폐쇄주의의 닫힌 안목에서 특히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운동과 연계된 민중문화운동의 터전을 펼쳐 줌으로써 문화예술이 이념적 프로파간다적 경향으로 쏠린 문제점을 낳게 된 것이다.

그와 함께 문화예술 행정이 철저하게 문화예술가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려는 과정에서 반정부적 활동에 대한 정당성의 빌미를 제공했던 측면에서 K컬처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전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얼마전 민예와 민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병모 교수께도 이젠 민화나 민예라는 계급적 차등을 강조하는 용어부터 없애야 할것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민학이라는 용어도 제법 그럴듯 해보이지만 예술과 문화를 통해 계급을 가르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를 이데올로기로 이어나가는 문화예술의 미학적 가치를 물적 자산에 치우쳐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원 김용준이 1930년대에 “예술의 소감”이라는 글에 지적했던 예술가, 문학자, 역사가, 철학자들이 우리 나라 문화예술의 미학 이론을 각자 도생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 것을 재음미해 보자. 예술이 뭐 그렇게 야단스러운 건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다반사에 불과한 것을, ‘민’자 전통예술이 우리들 곁에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고 더 멀리 세계 속으로 퍼져나기를 기대해 본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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