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란골일기] 남들이 보기엔 쉽지만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5 11:00:1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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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가지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단 손 닿는 곳의 굵은 가지는 전동가위로 잘라내고, 자잘한 것은 일반가위로 잘라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전동 톱으로 과감하게 잘라내는 전략을 택했다. 그렇게 하면 사과 수확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겠지만 어차피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우리한테는 그림의 떡, 수확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았다. 농부들은 사다리를 놓고 일을 하지만 사다리 위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그 사다리는 마치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하고 흔들거려서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사다리를 오를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차라리 나무를 잘라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키 큰 나무가 오그라든 손처럼 작달막해졌다.

귀촌한 사람은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이웃집 농부가 사과를 한 바구니 딴다고 해서 나도 한 바구니 딸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하면 몸은 힘들고 사과도 그렇게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는 그래서 필요하다. 더 심하게는 수확에 대한 기대마저 접어야 할지 모른다. 수확이란게 자연스런 순리처럼 다가오는 계절처럼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과밭은 처음부터 수확의 공간이 아니라 취미의 공간이었다. 사과나무 가지를 한번 잘라보는 것, 사과꽃이 환하게 피면 그 꽃에 취해 보는 것, 열매가 달리면 솎아내면서 그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무엇보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로 과도하게 집중되는 에너지를 분산하는 기능의 장으로서는 훌륭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그러다가 수확의 계절이 와서 얼마간의 사과라도 딸 수 있다면 그것은 덤의 기쁨이어서 그저 즐기면 될 일이니 욕심을 부려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촌해서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산 농부처럼 일을 하고 수확을 기대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는 시골에서 어린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계절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부터 욕심을 내려놓기까지 그는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겪을 것이고 좌절과 희망이 엇갈리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진정한 농부가 될 것이지만 그 이전에 그는 다른 일에서도 흔히 그렇듯이 겪어야 할 것은 모두 겪어야 한다.

우리가 재배하는 것은 미니사과라서 원래는 적과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도 그냥 내버려 뒀는데 나중에 사과가 굵어지면서 사과는 사과끼리 얽혀서 제대로 자라지도 않고, 무성한 잎 때문에 햇볕이 들지 않아 그늘 속의 사과는 익지도 않았다. 공간의 여유가 없으니 병충해에도 약해서 나중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방관의 경지에 이르고 말았는데 다음 해에는 열매는 솎아내면서 여름에 잎을 쳐줘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다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실패의 과정을 겪고 난 후에야 봄에 가지치기를 할 때 잔가지를 미리 잘라줘야 이파리가 덜 무성해지고 열매도 더 적게 열려서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3년째다. 3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다면 농사로 벌어먹을 계획인 사람은 거지가 되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다.

우리는 첫해에 이미 깨달아 버렸다.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그래서 사과밭은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다. 욕심이 사라지면 사는 일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다.

전동톱을 쓰는 일이 힘들어서 그 영역은 남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톱질만 드르륵 해주면 된다고 가볍게 말했는데 그 일을 하는데 휴일 하루가 온전히 바쳐졌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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