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 소파쪽에서 진동음이 들려온다. 헐떡대며 받으니 핸드폰에서 들려온 건 아들 목소리다. “엄마, 뭐하고 계세요?” “주전자 타고 있었지” 헉, 내가 발화한 단어인 ‘주전자’에 혼자 웃음이 났다. ‘자전거’처럼 ‘ㅈ’소리가 들어있긴 하지만 세 번이나 나타난 ‘ㅈ’소리와 함께 커다란 주전자를 타고 있는 동화속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나를 상상하니 우스웠던 거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동료교수가 말을 보탠다. 자기는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 과정 중에 지금 논문 지도하고 있는 학생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얼마 전 약속 정할 때 적어 놓았던 일정표 기록에서 그 이름을 찾고 있었다고. 유명 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한 글자만 말한 다음 “그 있잖아, 그 사람!” 하면 남편이 한 글자를 말해주어 겨우 세 음절을 맞춰 이름을 완성한다는 이도 있었다. 단어인출이 안 되거나 설단현상이 나타나는 건 현재 너무 하는 일이 많아 기억의 용량이 과부하 상태이거나, 청춘일 때와는 달리 작업기억과 집행기능의 감퇴 등으로 처리과정이 느려지는 노화현상 때문일 수도 있다.
노화에 따른 언어문제나 외상성 뇌손상 혹은 뇌혈관 사고로 인해 신경언어장애를 가진 실어증 성인들에게 언어의사소통치료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퍼즐이나 낱말카드, 색연필, 그림물감, 장난감 등을 앞에 놓아드리면 내가 왜 애들이 하는 이런 걸 해야하냐고 말하는 듯 확 밀치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 분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책상에 몸을 기울이며 재미있게 무엇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존재했다. 무학이어서 하나도 모르던 한글을 매일의 가슴떨림으로 새로 배우는 어르신들이 계셨는가 하면 질병으로 인해 잃어버린 소리, 잃어버린 글자가 되어버린 언어에 대해서 이제 다시는 안듣고 쓰지 않을 것처럼 소통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셨다, “엄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던 전직 교장선생님도 기억해낸다. 얼마간은 말과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그 앞에서 혼자 노래부르던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만 보셨었다. 후에 멜로디 억양법을 익혀 후렴구를 따라 부르게 되자 가사를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 눈물 글썽이던 그분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이미 나는 어른이야, 하며 살아오던 시간의 습관을 가진 채 늘 같은 모습으로 고집스럽게 걷지 않고 기꺼이 새로운 길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변화와 성장은 얼마나 눈부신가.
“나는 눈을 뜨며 소리친다. 아 아, 이게 당신이 묻어놓은 보물인가요? 바로 마음의 빛”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다. 그렇지! 나는 매일매일 마음의 빛이라는 이름의 선물을 받고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걸음마를 배우는 초보자가 될 것을 선택한다. 인생 후반기에는 새 신발을 신고서 새 여행길을 걸어 볼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끝)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