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빙하 곁에 머물기'위한 오늘의 노력

[ 월간환경 ] / 기사승인 : 2025-11-03 02:20:10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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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를 마친 후 신진화 연구원 /사진=Sepp Kipfstuhl
시추를 마친 후 신진화 연구원 /사진=Sepp Kipfstuhl




빙하는ᅠ참 매력적인 자연물이다. 누군가는 극지를 꿈꾸고, 누군가는 그 속에 갇힌 '둘리'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녹아내리는 빙하를 보며 자연의 위기를 떠올린다. 빙하는 그냥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지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몇 만 년 전의 대기, 온도, 기후까지. 지구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현재'를 연구하게 하는 매력적인 시료.



그 빙하의 매력에 푹 빠져, 얼마 전 <빙하 곁에 머물기>라는 책을 펴낸 극지연구소 빙하지권연구본부 신진화 연구원을 만나보았다.



Q.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여성 빙하학자다.



아무래도 빙하 시료가 너무 없다 보니까 한정적으로 학생들을 길러내고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박사 학위까지 진학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 거의 한국에서는 남학생들 중심이다 보니 유일무이한 여성 빙하학자가 됐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여성 빙하학자가 점점 더 생길 것 같다. 아직은 규모 자체가 너무 작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Q. 빙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빙하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있다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질학 학부 시절에는 한국 내의 빙하학이 제대로 규모가 갖춰진 상태가 아니었기에 전혀 존재를 몰랐다. 나는 단지 지구의 역사가 너무 재미있었다. 막연히 지구의 역사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이걸 직업으로 연결을 시키기는 좀 어려운데, 대학원 때 우연히 '빙하'라는 단어에 매료돼서 실험실 지원을 했는데 그 실험실이 빙하로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나에게 딱 맞는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는 곳'이었던 거다. 그렇게 빙하와 연이 시작됐고 사실 그 이후에 다른 분야의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계속 빙하와 인연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정말 재미있었던 학문이었는데 계속 이 길을 가게 돼서 좋다.



Q. <빙하 곁에 머물기>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좀 복잡한데 서른 살 때 석사 논문을 보면서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까 어느 순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팬데믹 때 캐나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데 너무 고립되어 있었고 연구 데이터도 딱히 없는 상태였는데 <오마이뉴스> 측에서 우연히 기획 기사를 써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제안을 수락해 아홉 편의 기획 기사를 쓰게 됐었고, 그 후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 작업을 제안해와서 진행하게 되었다. 과학책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얼떨결에 과학책을 쓰게 되어서 초반에는 방향 잡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과학지식을 그냥 풀기는 쉽지만 책은 읽혀야 하는 거니까. 지금 기후 위기가 있다,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행동을 연결시키는 식의 글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걸 어떻게 와닿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눈 시료 확보하는 모습 /사진=신진화
눈 시료 확보하는 모습 /사진=신진화




<빙하 곁에 머물기>라는 제목은 출판사 측에서 제안한 제목인데,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짜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제목이었다.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이 여러 가지이다.



독자로서는 "우리가 평생 빙하 곁에 머물 수 있어야 된다, 지구 기후 위기로 빙하를 다 잃으면 우리 생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라는 의미도 될 수도 있는 것 같고 개인적인 입장에는 <빙하 곁에 머물기>의 에필로그에서도 썼지만 계속 빙하 곁에 살아남는 과학자로 있고 싶다는 의미로 또 들어가지 않나. 그래서 되게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큰 것이다. 중의적인 뜻을 품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Q. 학생들 대상으로도 강연을 많이 하고 있다. 주로 어떤 것을 강연하나? 학생들의 반응은?



극지연구소와 청소년수련관이 연계해서 직업을 소개하는 강의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해서 5월에 세 번 정도 했다. 빙하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는데 강연이 끝나면 아이들이 질문을 되게 잘한다.



지구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물어보고 캠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물어본다. 거기 음식 문제는 어떻게 하냐, 식재료는 어떤 식으로 수급하고 거기 슈퍼마켓이 없을 텐데 식재료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 같은 음식 이야기부터 쓰레기 문제 이야기도 많이 하더라.



캠프에서 사용한 쓰레기는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부터 빙하가 다 녹게 되면 지구는 어떻게 되냐, 이런 질문들도 구체적으로 하고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어린애들 앞에서 기후 이야기할 때 좀 미안하다. 기성세대들과 달리 이 친구들은 태어나자마자 기후 위기를 겪고 맞이한다.



태어나자마자 기후 위기를 걱정해야 된다고 하고 많은 미디어에서 멸망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그 친구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가 밝아야 되는데 어두운 면부터 먼저 보고 자라니까 나중에 약간 미안하기도 하다.



Q. 1년 내내 그렇게 빙하만 연구하는 건가?



보통은 기존에 있는 빙하 시료를 이용해서 분석하고 논문을 쓰게 된다. 과정을 설명하자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연구 목적에 관한 연구 지역을 선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추하러 가서도 연구 목적에 따라서 예를 들면 150m 정도의 깊이라면 한 번씩 가서 시추할 수 있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 빙상 맨 위에부터 아래까지 한다면 몇 년씩 걸리는 프로젝트가 되는 거다. 근데 우리 같은 경우는 그 과정을 다 겪으면서 하지는 않고 만약에 실험실에 어떤 타깃의 빙하 코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분석해서 데이터를 얻고 논문 쓰고 이런 식으로 해서 대부분의 시간은 연구소에 있다.



시추하는 것도 그 기간이 남극의 하계나 그린란드의 하계로 제한되어 있고 제한된 기술자 중심적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현장에 가서 시추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비용 문제도 있고, 제한된 인원이 가야 하니까 우선순위에서는 조금 많이 밀리는 경향이 있다.



Q. 빙하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Hand auger로 천부 빙하를 시추하는 신진화 연구원 /사진=Sepp Kipfstuhl
Hand auger로 천부 빙하를 시추하는 신진화 연구원 /사진=Sepp Kipfstuhl




기본적으로 화학 분석을 기준으로 보게 되면 물 파트와 공기 파트를 나눌 수가 있는데 물 파트 같은 경우에는 빙하를 녹여서 그 안에 있는 먼지의 농도나 농도 변화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본다. 산불로 인해서 발생한 물질들이 그린란드까지, 극지까지 넘어오기도 하는데 그것을 통해 산불 빈도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그 지역의 온도 변화는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다. 또, 화산 활동이나 핵실험으로 생긴 물질이 극 지역까지 넘어오는데 그 물질을 복원할 수도 있다. 화산 활동이나 핵실험으로 인해서 넘어온 물질을 통해서 성층권의 순환에 대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대기 같은 경우는 온실기체 농도를 복원해서 과거에 온실 기체 농도가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이건 제한된 예시이고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입자들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고, 어떤 식으로 빙상이 압축되고 변화됐는지에 대한 정보를 다 알 수 있다.



Q.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이산화탄소를 연구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지구 평균 온도까지 높아진다. 과거 80만 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데이터를 보면 인류 활동의 영향이 거의 제한되어 있던 시기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180ppm에서 280ppm 정도였는데 지금은 400ppm을 훌쩍 넘어 420ppm을 웃도는 상태다.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서 지구 평균 온도도 1캜 이상 올라간 상태다. 많은 과학자가 지금부터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지금 같은 생활을 지속하면 4캜. 나는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서 4캜가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단순히 온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기후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대표적인 게 극심한 가뭄과 극심한 홍수 그에 따른 산불 등이다.



그런데 사실 지구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크게 의미 없다. 이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영향을 받는 것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다. 특히 인류. 변화의 제일 큰 의미는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구 평균 온도를 낮추기 위해 하는 노력은 수능 100일 전 같은 것이다. 100일 전이라도 내가 열심히 하면 좋은 점수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아직 늦지는 않은 것이지 않나.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다. 다만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십 년 전부터 노력했으면 당연히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전 지구인이 다 노력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최근에 인기였던 AI 이미지 생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I 그림 한 장을 이제 만드는 데 발생하는 탄소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많았다.



어떻게 잘 양립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예 안 안 쓸 수는 없으니까. 과학기술은 좋은 의도로 발전이 되지만 그로 인한 영향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Q. 연구 이야기할 때 매우 행복해 보인다.




2500m 아래에서 시추한 빙하코어 모습 /사진=신진화
2500m 아래에서 시추한 빙하코어 모습 /사진=신진화




많은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 이렇게 이런 표현 하면 조금 그렇긴 한데 결국은 우리가 연구하는 것이 기존에 있던 연구에서 더 많은 것을 채워나가는 과정이지 않나. 예를 들면 나는 박사 때나 석사 때나 이산화탄소 노드 데이터를 복원하는 쪽으로 연구했다. 기존의 데이터는 아무래도 그때 한계적으로 듬성듬성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듬성듬성 된 것을 더 촘촘히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됐는지를 알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몰랐던 것들이 더 보일 때 되게 재미있는 것 같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전 세계인 중에서 나만 그 데이터를 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Q.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후를 위한 생활을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책에 쓴 내용이기는 한데 우리가 어떤 일 할 때 '나 혼자쯤이야'라고 많이 생각하지 않나. 근데 이 '혼자쯤이야'가 점점 많이 모이게 되면 이 효과는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 '우리가 투표할 때 어떠한 후보에 투표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투표율이 높다면 정치인들이 긴장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긴장하고 국민을 생각하면서 일 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지 않나.



기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가 기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조금씩 실천하다 보면 기업이 긴장하지 않을까.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냐, 생각하지 않는 기업이냐로 평가가 갈리는 것에 대해서 긴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점점 더 기후를 생각하는 방안들을 만들어낼 거고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게 되면 정치인들도 점점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해서 이런 작은 힘들을 모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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