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국제뉴스) 백승일 기자 = "사람이 죽었는데, 발전기만 돌아가면 그만인가요?"
지난 6월 2일 오후 2시 35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50대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충현 씨는 공작기계에 끼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18년 고 김용균 씨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사고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6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사고 직후 작성된 한전KPS의 사고 보고서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보고서에는 "파급피해·영향 없음", "발전설비와는 관련 없는 공작기계에서 발생"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노동자의 사망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마치 생산 차질이 없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듯한 표현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족과 시민사회는 분노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칭)는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노동자의 죽음에 애도도, 책임도 없는 이 반인간적인 보고서야말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 민낯을 보여준다"며 "발전소가 멈추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식의 태도는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현장에는 이미 국화꽃이 놓였다. 그러나 유가족의 마음은 좀처럼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 고인의 사촌형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음에도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아무도 책임 있는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하게 촉구했다.
사고를 조사 중인 고용노동부 서산지청은 해당 작업장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안전관리 실태와 사고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도 현장 CCTV를 확보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검토 중이다.
정당도 움직였다. 진보당 충남도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이번 사고를 "위험의 외주화가 빚은 예고된 비극"이라 지적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원청의 구조적 책임이 개인의 부주의로 전가되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어 진보당은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 밝히며, "다시는 어떤 노동자도 생명을 담보로 일하지 않도록 '안전한 노동'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이 있는 한전KPS는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 한전KPS측 관계자는 사망한 김 씨가 한전KPS 소속이 아닌 한전KPS 협력기업인 한국파워오엔엠 소속이라고 밝혀왔다.
노동자가 죽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또 침묵했다. '파급피해 없음'이라는 차디찬 한 줄이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다시 묻고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발전기 가동이 우선인 이 구조,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