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기자]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첫 탄소세 시장 도입이 최종 단계에서 무산됐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제도인 ‘중기조치(Mid-term Measure)’의 채택을 내년으로 연기하면서, 국제해운의 탈탄소 전환 시계가 멈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4~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IMO 특별회기에서는 탄소세 부과를 포함한 중기조치 최종안을 둘러싸고 각국 간 치열한 협상이 진행됐다. 이번 회의는 국제해운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분수령으로 꼽혔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 탄소세 기반 ‘중기조치’, 교착 끝에 표결로 연기
중기조치는 선박의 온실가스 집약도(GFI)에 따라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탄소세를 부과하는 시장 메커니즘이다. 조성된 기금은 무탄소 연료 전환, 기후취약국 지원 등에 활용돼 **공정하고 정의로운 책임 분담(CBDR)**의 실현 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협상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미국은 중기조치 찬성국들을 상대로 관세·비자 제한 등 보복 가능성을 경고했고, 산유국 등 반대국들은 “졸속 추진”이라며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했다. 일부 국가는 “해운은 전 세계 배출의 3%에 불과하다”며 감축 필요성을 축소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도서국 등 찬성국들은 “발효 전까지 지침을 보완해 공정성을 확보하면 된다”고 반박했지만, 끝내 합의는 불발됐다. 결국 회기 종료 직전 표결이 진행됐고, ‘1년 연기’ 안건이 과반의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IMO의 중기조치 채택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 2050 탄소중립 향한 제도적 시계 멈춰
이번 연기로 IMO가 설정한 ‘2050년 국제해운 탄소중립’ 및 ‘2030년까지 10% 무탄소 연료 전환’ 목표 달성을 위한 이행 기반이 흔들리게 됐다. 기후솔루션은 이를 두고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후 리더십이 후퇴한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은 “차기 회의에서 중기조치가 채택되더라도, 2028~2030년 불과 2년 사이에 20~30% 감축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선사와 조선업계 모두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한국 해운·조선 경쟁력에도 부정적 신호
세계 1~2위 조선산업과 7위권 해운산업을 모두 보유한 한국에도 이번 결정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선사인 HMM,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은 이미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친환경 선박 발주와 무탄소 연료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제 규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투자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연기가 아니라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신호”라며 “한국 정부 역시 IMO 차기 회의에서 보다 적극적인 기후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30년은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의 분기점”이라며 “1년의 지연은 국제사회의 기후시계를 늦추는 심각한 후퇴로, IMO와 각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2050 탄소중립 항로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