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의 정치평론 TK 유권자 ‘제3의 선택지’가 사라졌다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8 10:08:55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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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 송국건 TV 대표
TK 유권자 ‘제3의 선택지’가 사라졌다

개혁신당 공동대표 이준석은 국민의힘에 몸담고 있을 때 ‘TK 정치’를 마음껏 야유하고 조롱했다. 그의 눈에 같은 당 소속 대구 국회의원들은 “앉아서 밥만 먹는 12마리 비만 고양이”에 불과했다. 자신이 대구에 출마한다면 싸울 상대는 “그중에서 가장 나쁜 놈” “반개혁적인 자”였다. 지역 유권자 중엔 그렇게 당돌한 이준석을 좋게 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민주당 좌파 정치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지역 여당 의원들의 낡은 우파 정치도 마뜩잖아하던 유권자들이 그랬다.

이들은 이준석이 기어코 당을 떠나 ‘개혁신당’을 만들었을 때도 지지를 보냈다. 2월 첫 주 ‘갤럽’ 기준 이준석이 이끌던 개혁신당 정당 지지율은 3%에 그쳤다.(1월30일~2월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대구·경북에선 전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7%의 지지를 기록했다. 만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좀 더 지역민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면 총선 때 어느 정도는 ‘제3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호남 지지율은 2%로 저조했다.

설 연휴 첫날 이준석은 돌연 이낙연, 금태섭, 조응천·이원욱·김종민 세력과 ‘통합’을 선언했다. 통합신당의 당명은 ‘개혁신당’을 이어받았으나 이준석을 제외하곤 모조리 민주당 출신 좌파 정치인들이다. 명색이 국민의힘 당 대표를 지낸 이준석의 지지자는 기본적으론 우파 성향이 강하다. 이준석도 국민의힘을 탈당하며 “보수의 노아의 방주가 될 정당을 만들겠다”라고 했다. 우파 정치를 유지하다가 보수 진영이 위기에 빠질 때 구하러 오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런 이준석이 하루아침에 좌파 세력에 합류한 격이 됐으니 지지자들의 탈당 도미노가 일어났다. 더구나 젠더 이슈와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서 각각 이준석과 대척점에 섰던 정의당 출신 류호정, 배복주가 통합신당에 합류하자 지지자 이탈에 가속이 걸렸다. 갤럽의 2월 3주차 조사에서 통합신당인 ‘개혁신당’의 정당 지지율은 4%에 그쳤다. 통합 전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이 각각 3%였는데, 하나로 합쳤음에도 시너지는커녕 3+3이 6이 되지 못하고 4가 돼 버렸다. 특히 대구·경북에선 단 1%의 지지만 받았다. 이준석 혼자 이끌던 개혁신당(7%) 지지율을 통합하는 순간 다 까먹었다. 대신 이낙연의 합류로 호남에선 7% 지지를 받았다.

당황한 이준석은 기존 지지자를 달래느라 이낙연을 겨냥해 또 내부 총질을 해댄다. 통합신당의 주인은 자기이고, 이낙연 등의 세력은 흡수통합 했다고 주장한다. 이낙연을 공동대표로 한 건 국무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예우 차원이었다며 자기가 ‘전권 대표’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이낙연 쪽도 “또 몽니를 부리기 시작하겠다는 것”이라며 맞대응에 나섰다. 이준석과 함께 이낙연 세력과 통합했던 양향자조차 “가치와 비전, 철학과 목표가 분명치 않은 정치적 세력 규합만으론 ‘100년 정당’은 커녕 ‘1주일 정당’도 안 된다는 게 제 판단”이라고 푸념했다.

통합신당의 위기는 내부 주도권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졸속 통합의 진짜 이유가 국고에서 나가는 정당 보조금을 더 많이 타내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또 각 세력이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빚을 졌는데, 그걸 어떻게 갚을지를 놓고 갈등이 벌어진다는 말도 들린다. 급기야 최고위원회의가 정례화한 지 두 번째 만에 전격 취소되고, 이준석의 긴급 기자회견도 돌연 열리지 않는 등의 비정상적인 일이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이준석에겐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본격화한 만큼 낙천자들을 데려가는 통합신당의 이삭줍기도 시작된다. 이 경우 수도권과 호남에서 낙천하는 민주당 현역들은 이낙연 등 민주당 출신이 대부분인 개혁신당에 갈 수 있다. 반면, 영남에서 대거 낙천하는 국민의힘 현역들은 이낙연이 공동대표로 있는 개혁신당에 가기 어렵다. 차라리 무소속 출마가 낫다고 판단할 거다. 이를 대구·경북 유권자 처지에서 보면, 모처럼 눈앞에 놓일 가능성이 있었던 제3의 선택지가 사라져버린 셈이 된다. 이준석 개인의 대구 출마도 좌파 정치와 손잡는 순간 사실상 물거품이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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