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국제뉴스) 김옥빈 기자 = 경마는 경쟁과 기록의 세계다. 하지만 때로는 성적보다 오래 남는 이야기가 있다. 은퇴 경주마 메이저킹과 김진영 마주의 인연이 그렇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성적과 기대치가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경주 현장에서 메이저킹은 2013년 국내 최우수 3세마로 선정되고, 미국 원정 경주 출전과 종마 활동까지 이어가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다만, 여러 도전이 기대만큼의 결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김진영 마주는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아온 말을 끝까지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김진영 마주는 수십 년간 말과 함께해 온 원로 마주다. 어린 시절 조부와 함께 승마를 하며, 말과 인연을 맺었고, 뚝섬경마장 시절 말을 입찰하며 경마에 발을 들였다. 부산·경남 경마공원 유치 과정에서는 직접 지자체장을 찾아다니며 힘을 보탰고, 2005년에는 부산·경남 마주협회 초대 회장을 맡아 경마 문화 확산과 마주 제도 정착에 앞장섰다. 그는 부산·경남 경마공원 조성 당시 가장 먼저 마주 신청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경주마를 가족처럼 여기는 마주들은 많지만, 김진영 마주의 애정은 여느 마주보다 각별한 편이다. 그는 평소 "말이 좋아서 마주가 됐다. 말과 마주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말해왔다. 주요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양복과 선글라스를 갖춰 입고, 직접 예시장에 나와 경주마를 이끌며 관람객에게 말을 소개하곤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그의 말 사랑은 많은 경마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메이저킹은 김진영 마주가 지난 21년간 함께해 온 수많은 말 가운데서도 각별하게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이다. 메이저킹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2) 대상경주에서 우승을 거두고, 그해 삼관 시리즈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당시 국내 최고 경주마로 주목받았다. 이후 세계 무대에 도전했지만, 해외 원정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종마로 전환한 뒤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보통 이 시점에서 마주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김진영 마주의 선택은 달랐다. 메이저킹의 은퇴가 결정되자 김 마주는 "메이저킹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제가 메이저킹을 위해 보답할 차례"라며 직접 여러 목장을 둘러본 끝에 넓은 방목 환경을 갖춘 호포승마스쿨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정했다.
김진영 마주는 메이저킹을 단순한 종마로 보지 않았다. 그는 "메이저킹은 제 자식 같은 말"이라며 "기대했던 성적이나 결과와 별개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의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시상식 당시 메이저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 단골 은행에서 제작해준, 메이저킹의 우승일자(2013년 10월 16일)가 담긴 계좌번호를 각별히 간직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꺼내 보이며 당시의 기억을 전하곤 한다.
기록으로 남은 성과보다 함께한 시간과 추억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메이저킹을 향한 김진영 마주의 마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마주 생활을 함께해 온 부인 장혜정 여사와 함께 정기적으로 목장을 찾아 메이저킹의 상태를 살핀다. "메이저킹을 만나는 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처럼,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와 교감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목장 관계자에 따르면, 메이저킹은 멀리서도 김진영 마주의 발소리를 알아차리고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현재 메이저킹은 다른 은퇴 마들과 함께 규칙적인 운동과 관리를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메이저킹의 의료 지원을 위해 목장을 찾았던 한국마사회 서유진 수의사는 "나이에 비해 컨디션이 매우 좋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안정된 환경이 노령마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해외 경마 선진국에서는 경주 성적과 씨수말로서의 성과를 모두 인정받은 일부 말에 한 해 명예로운 '펜션(pension)'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성공적인 이력을 지닌 말들이 개인 초지를 갖춘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관람객들은 그 명성을 기억하며 목장을 찾는다. 반면, 김진영 마주는 성적이나 번식 성과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한 말에 대한 고마움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책임지는 길을 택했다. 메이저킹과 김진영 마주의 이야기는 은퇴 경주마와 동물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을 한층 넓히며, 한국 경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