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주, 술빚기 교육과정 중 최고 인기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2 14:35:45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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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과정의 ‘우리술 맛있게 빚기’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여러 가지 전통주를 직접 빚도록 하고 있다. 술 빚는 방법으로 나눈다면 기본적인 삼양주 빚기부터 이양주, 단양주까지 다양하다. 고문헌에 수록되어 전해오는 술빚기 방법 그대로 재현해내는 술들이 대부분이다.

1459년 경 지어진 산가요록(山家要錄)을 비롯해 수운잡방(1540년), 음식디미방(1670년), 증보산림경제(1766년), 규합총서(1809년), 임원경제지(1800년대 초) 등 다양한 고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전통주 중에서 수강생들로부터 가장 반응이 좋은 술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동정춘(洞庭春)과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 청명주(淸明酒), 과하주(過夏酒) 등을 맛보고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들 술을 시음하고는 전통주를 보는 시각이 확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특히 몇 만 원대의 가격대를 보이는 전통주가 왜 그렇게 비싼지 납득할 수 있겠다는 반응도 보인다.

이중에서도 과하주는 수강생 중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술 중 하나이다. 지날 과(過), 여름 하(夏)를 쓰는 과하주는 글자 뜻 그대로 ‘여름을 지나는 술’이란 뜻이다. 옛 문헌에는 ‘달고 독한 술’로 표현하고 있다.

달고 독하다는 표현은 과하주를 만드는 과정을 알고 나면 이해된다.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엔 더운 여름에 술을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발효주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탄생한 것이 과하주다. 과하주는 발효주인 막걸리에 막걸리를 증류한 소주를 넣어 알콜도수를 20% 정도로 높여서 술이 상하지 않고 더운 날씨를 견디도록 만든 술이다. 독한 술이란 표현은 알콜도수가 높은 술이란 뜻이다.

단맛이 강한 이유는 발효 도중에 알콜도수가 높은 소주를 부어 넣어 발효를 중지시켜서다. 알콜도수가 높으면 삼투압 현상 때문에 효모 속으로 알콜이 스며들어 효모의 활동을 정지시킨다. 알콜발효가 중지되는 것이다. 알콜발효란 전분분해효소에 의해 쌀의 전분이 당으로 바뀌고 효모가 이 당분을 먹고 알콜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효모가 당을 먹어치우기 전에 발효를 중단시키면 술에 당 성분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고 단맛이 강한 술이 된다.

이처럼 ‘과하주 빚기’ 교육과정은 복잡하면서도 과학적이다. 먼저 막걸리를 증류해서 알콜도수가 40% 정도인 소주를 내려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따로 막걸리를 빚고 이 막걸리 발효 도중에 소주를 부어 넣어주면 된다. 당연히 발효 3일째 소주를 넣으면 7일째 소주를 넣은 것보다 단맛이 강할 수밖에 없다.

과하주는 음식디미방(1670년)에 언급된 걸로 봐서 그 이전부터 빚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주방문, 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역주방문, 양주방, 시의전서 등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걸로 봐서 조선시대 당시엔 전국적으로 널리 애용된 술임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의 포트와인(Port Wine)이 비슷한 제조방법으로 만든 술이다. 포도주를 발효시키는 도중에 포도주를 증류한 도수 높은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중지시키면서 알콜도수와 당도가 높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든 것이다. 발효주에 발효주를 증류한 증류주를 넣는 방식은 똑같다.

전해져오는 문헌상 기록으로 보면 과하주가 포트와인보다 100년을 앞선다. 아쉬운 것은 포트와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주의 반열에 오른 반면 과하주는 우리나라에서조차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맛과 향을 따져도 결코 뒤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직접 과하주를 만들어보고, 시음해 본 수강생들은 과하주의 맛과 향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먼저 알콜도수 20%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의 부드러운 맛에 한 번 놀란다. 술을 빚는 과정에 과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음에도 과하주에서 풍기는 풍성한 과일향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요즘 젊은층에서 전통주양조장 설립 붐이 일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은 좋은 술이 넘쳐나고 있다. 우리술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수백년 이어오면서도 잊혀져가는 좋은 술들이 많아 안타깝다. 고문헌에 수록된 전통주를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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