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5 13:11:0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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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금동지 전 경남대학교 교수/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작은 거인’은 한 대상을 향해 상반되는 의미를 함께 묶어 사용하는 말 중 하나이다. 거인이라면 덩치와 행동이 커야 하는데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사람이 생각의 폭이나 깊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고, 일을 해내는 능력에 있어서도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거침없이 해낼 때 우리는 흔히 작은 거인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사는 것은 나의 복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복이다.

친구들끼리 신우회를 하고 있다. 그 친구 중 하나를 우리는 ‘왕초’라고 부른다. 마치 깡패들의 집단에서나 보듯이 찻잔을 부딪치면서도 ‘충성주’를 마신다고 하고,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라는 건배사로 ‘조배죽’도 외친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즐겁게 맹세를 한다.

자식들에 대한 헌신이 지극했던 사람이다. 성모당과 새벽 미사, 그리고 철야기도까지, 자식들 뒷바라지로 온몸을 바치더니 그 아이들이 훌륭히 성장하고 출가하자 그녀는 어머니와 아내에서 성숙하고 멋진 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친구이자 리더가 되어서.

마냥 거룩하고 모범만 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카리스마를 뿜으며 가진 것, 잘하는 것으로 거침없이 우리를 이끌어간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수더분한 구시대의 순종형 여성이 아니라 톡톡 튀고,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의 칼칼함이 마음에 쏙 든다. 가진 것을 감추고 잘하는 것을 숨기는 소위 겸손을 가장한 물러남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 시대에 이런 솔직함과 베품, 나눔이 여간 신선하지 않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남편 또한 그녀의 서포터를 자청했다. 코로나로 3년간 피아노를 놀이 삼아 시간을 보내다가 밴드에 들게 된 아내를 위해 멋진 음악실을 지원한 것이다. 음악실이 생기자 종교와 관계없이 노래를 좋아하는 동기들끼리 모여 공연도 하고 노래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기를 벌써 몇 달째 하고 있다. 선곡은 물론이고 기타와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면서 그녀는 친구들의 실력과 흥을 돋우어 준다.

각자의 형편대로 음료수나 과일, 떡을 들고 모이면 노래와 음식이 있는 작은 잔치가 되고, 이런 잔치가 한 달에 한 번은 공식적으로 열린다. 그래서 음악실은 그녀의 놀이터에서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늘 우리의 예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니! 노래 잘하는 두 친구를 보컬로 세우고 초보자인 친구들을 모아 새로운 동기 밴드를 결성한 것이다. 때마침 퇴직을 한 나도 그 밴드에 들어 드럼을 연주하는 신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의욕만 가득하여 박자도 화음도 절뚝거리고 있는 우리에게 내년엔 더 나을 것이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10년 후에는 멋진 밴드가 될 것이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독려한다. 순례단 단장에서 밴드 리더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솔선수범에는 아무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게 된다.

삼십 명 가까운 친구들의 회의 때에도 “나중에 우리들의 경로당이 될 터인데 음식 냄새야 환기하면 되지.”라고 하며 아끼는 음악실도 서슴없이 내어놓는 그녀를 보며 내 손에 들고 내어놓지 못하는 어쭙잖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가졌다고 다 베풀지 않고 잘 났다고 다 봉사하지 않는다. 다들 재력도 재능도 다 숨기기만 하고 몸을 사리기만 하지 않나? 그래서 이 인연이 고맙고 그래서 그녀가 더 귀하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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