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후배교사에 귀중한 경험 전할게요”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14 00:51:16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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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복현초등학교 1학년 7반 아이들의 책 〈토끼야, 안녕? 민들레야, 반가워!〉(2023. 여행자의 책)에 실린 '그림독후감'.
“저는 치타처럼 엉뚱한 생각이 나요. 엉뚱한 생각이 나면 계속 아까 생각한 것을 생각해요. 엉뚱한 생각이 안 나면 좋겠어요.”(〈나는요〉, 박형오) “너도 엄마 아빠 앞에서는 울어도 돼. 사람들은 원래 우는 거야. 나도 다쳤을 때 우리 친구들 앞에서 운 적이 있어. 친구들 앞에서는 우는 거야. 잘했어.”(〈울지 않는 개구리〉, 도하은)

초등학교 1학년이 쓴 글이다. 그림책을 보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그린 뒤, 그 그림에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그림책 감상문을 그림책 형식으로 표현한 ‘그림독후감’이다. 〈토끼야, 안녕? 민들레야, 반가워!〉(2023. 여행자의 책)는 대구복현초등학교 1학년 7반 어린이들의 ‘그림 독후감’을 묶은 책이다. 22명의 공동저자의 그림독후감이 모두 91편, 대상 그림책은 53권이다. 엄마아빠와 교장선생님의 ‘그림독후감’도 부록처럼 실려 있다. 엮은이는 최순나 담임선생님이다.

“책으로 묶으려면 어느 정도 통일감이 필요해서 동물과 식물이 주인공인 그림책을 하기로 했어요. 그림책은 교실에 몇백 권 있고, 집이든 도서관이든 어디서 가져와도 되니까. 처음 한두 권 그림책을 같이 보고 얘기를 한 뒤에, 아이들 스스로 그림책을 골라 보고 한 장씩 그리고 쓰도록 했습니다. 그냥 자유시간만 준 거죠. 그런데 애들이 점점 하고 싶어 했어요. ‘한 권만 더 읽으면 안 돼요?’ 이런 분위기였어요, 그렇게 쌓인 ‘작품’ 중에서 제가 고르고 오탈자만 고쳐서 만든 게 이 책이에요. 처음에는 글씨도 자필을 살리려고 했는데, 너무 혼란스러워서 글은 워드로 작업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안부를 묻는 정도밖에 못 쓰지만, 그게 딱 8살 아이들이죠.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제가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36년 하면서 지키는 원칙이 ‘저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고치지 않는다.’입니다 오탈자는 고쳐주고 비문은 빼주고 이런 정도만 합니다.

아이들하고 글쓰기 할 때 자주 하는 말이 ‘보물찾기’예요. 자연 현상이나 생활에서 어떤 글을 써오면 그건 바로 일상에서 숨어 있는 보물 찾아낸 거잖아요. 저는 그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주는 역할만 합니다. 10줄을 써왔는데 세 줄만 살리는 건 해도, 허락 없이 넣는 건 안 하는 거죠. 그리고 ‘선생님이 너희들 글 중에서 찾아준 것은 선생님 마음에 보이는 것만 찾았을 뿐이야, 나머지 글들이 보물이 아닌 건 아니야.’라고 자주 말해줬어요. 하다 보면 자기들도 글 보는 눈이 생겨요. 나중에는 ‘어느 부분을 책에 실으면 좋겠어?’ 하면 아이가 밑줄 치는 부분이랑 제가 치는 부분이랑 일치하는 날이 오죠. 저는 또 첫 번째 독자의 자리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책 만들 때는 애들 글을 모아 집에 가져가서 봅니다. 교실에서 보면 검사하는 것 같고,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거든요. 집에서 보면 첫 번째 독자 입장이 되고, 글에서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그대로 보여요.”

인문서점 '여행자의 책'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최순나 교사.
1988년 대구성당초등학교에서 첫 제자들과 만났을 때부터 최순나 교사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함께 해왔다. 과학시간이든 미술시간이든 ‘시인으로 변신’해서 그날 배운 것을 소재로 자기 글을 쓰는 5분을 준다. 낙엽이 떨어져도, 교실에서 우유를 쏟아도 아이들은 책상 밑에 넣어둔 공책을 꺼내 한 줄, 두 줄 자기 글을 썼다. 그는 교육대학 시절부터 이오덕 선생을 사숙했다. 졸업 논문도 이오덕 선생의 ‘삶이 있는 글쓰기’에 대해 썼다. 그는 교단에서 그 가르침을 실천해왔다.

이렇게 모인 글은 매년 ‘마스타 인쇄’로 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기도 하고, 워드로 작업해 CD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대구교육청의 학생저자 출판지원 사업에 선정돼 대구월암초 4학년 1반 어린이들의 ‘강낭콩 꼬투리가 생겼어요’(2018. 만인사)를 정식 출간했고, 2019년에는 교원저자 출판지원으로 ‘최순나 교단일기,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를 출간했다. 지금까지 20여 권의 학생저자 책, 교원저자 책을 냈다.

최순나 선생님이 만든 책들.
“학생저자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출판사의 시인 사장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아이들 책을 보면 지도하신 선생님들의 흔적이 보이고, 아이들은 다른데 글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 선생님 원고에는 최순나의 냄새가 안 나고 그냥 아이들의 향기가 난다. 해마다 다른 애들이 다른 짓을 하고,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이런 말씀이었어요. 제게는 가장 큰 칭찬이었죠.”

최순나 선생님은 30여 년 전 초임시절과 요즘을 비교하면 아이들이 말을 훨씬 재미있게 자유롭게 잘하는데, 글을 쓰라고 하면 굳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긴 체험 후 짧은 글쓰기’를 통해 살아있는 글이 나오는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

“1학년 남자아이가 이런 시를 썼어요. ‘다음이란 없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다행히 잘했다.’ 학예발표회에서 연극을 하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얘가 ‘선생님 이제 안 떨려요.’ 이러더니 공책을 꺼내서 바로 쓴 시예요. 또 과학시간에 운동장에서 가을에 대해 공부를 한 뒤, 교실에서 어떤 가을을 찾았는지 한번 적어볼까, 하고 3분에서 5분 정도 줬어요. 한 아이가 ‘매미 소리 안 들린다. 스트로잣잎이 노랗다’라고 썼어요. ‘매미 소리 안 들린다’ 이 한 줄만 해도 완벽한 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름의 부재로 가을을 노래하는 멋진 시예요. 개구쟁이에 글씨도 엉망인 애였는데, 이 시로 큰 칭찬을 듣고는 스스로 시인이라 생각하면서 생활이 달라졌어요. 시 지도는 강력한 인성 지도이기도 해요. 또 한 번은 소나기 오는 날 4학년 교실에서 ‘번개와 천둥’이라는 제목으로 글쓰기를 했는데 한 아이가 이렇게 썼어요. ‘번개는 맨날 1등으로 오고 천둥은 맨날 꼴찌로 와서, 천둥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천둥번개라고 부르나 보다.’ 우리가 ‘번개천둥’이라고 하지 않고 ‘천둥번개’라고 말하는데 착안한 글이지요. 내 앞에서 쓴 글이 아니었다면 어른이 도와준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최순나 선생님과 제자들이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 153회 화면 캡쳐.
아이들과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책을 만들다보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도 찾아왔다. 2021년 대봉초등학교 1학년 담임 때 아이들과 만든 책을 계기로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53화에 출연한 것이다. 그해 말 EBS에서 출간한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EBS. 2022)은 예비 초등 학부모들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1학년 전문 현직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 교사는 연구부장, 교무부장 8년 동안에도 담임을 계속했다. 보직을 맡으면서 수업이 적은 1학년을 맡았는데 그 후에도 1학년 담임을 자주 맡아 모두 13번을 ‘첫번째 선생님’으로 지냈다.

〈토끼야, 안녕? 민들레야, 반가워!〉는 현직교사 최순나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만든 책이 됐다. 정년퇴임까지 3년 6개월이 남아있는 최 교사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을 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교사’라는 말을 좋아했던 사람, 제주도 여행 가서 풀밭을 보고는 ‘우리 반 애들 데리고 와서 여기서 놀면 딱인데’라고 말해서 주변으로부터 핀잔을 듣는 사람이었다. 최 교사의 지인들은 물론 자신도 평교사로 정년퇴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명예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사 생활을 10년 정도 했을 때, 학부모를 동지로 삼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교단일기를 쓰고 학부모들과 공유했어요. 학부모 워크숍, 학부모 대상 강의를 하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TV에 나오고 EBS 책이 나오면서 지난해 유치원 학부모 강의를 50~60회 정도 했어요. 제가 1학년 담임으로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해주면 만족도가 높아요. 지난해 가을 어느 유치원에서는 엄마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해요. 나중에 ‘선생님 덕분에 우리 가정이 바뀌었습니다.’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전에는 후배 교사들에게 강의도 꽤 많이 했어요. 후배 교사들을 위해 쓴 책도 반응이 괜찮았고요. 저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의 해결은 교사의 용기와 교사의 변화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가을에 갑자기 교사를 관두고 학부모 강의, 교사 강의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6년 교단 생활을 마무리 하면서 최순나 교사는 “1천명을 다 지금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준 아이들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담임을 행복하게 해왔고 우리 반 애들도 행복하게 지냈다”는 그는 앞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학부모와 후배 교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인생의 후반부를 채우고 싶다고 한다. 최순나 선생님의 마지막 교단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교단을 떠나 오래전 나의 제자였고, 지금은 학부모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땅의 부모들에게 위로과 격려를 해 주고 싶다. 2024년 3월 4일 나는, 나의 마지막 제자들이 있는 대구복현초등학교에서 설렘과 두려움으로 입학식에 참가한 학부모들에게 특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밖 교사로의 첫날, 내 마지막 일터에서 또 다른 나의 제자들을 위해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최순나 선생님의 마지막 교실.
〈최순나 교사 약력〉

▪1988. 3. 1 대구성당초등학교에서 첫 제자들과 만나고 매일 글쓰기 교육을 함께 시작하다.

▪1992년부터 대구성명, 대구남도, 대구영선, 대구대봉, 대구효명, 대구월암, 대구대봉, 대구복현초에서 근무하다

▪1989년부터 대구아동문예연구회, 영남아동문학회 활동을 시작하다.

▪2002년부터 일상 수업 이야기를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와 나누기 위한 교단일기 쓰기를 시작하다.

▪2010년부터 배움의 공동체를 만나 한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학생 중심 수업을 꿈꾸다.

▪2017년부터 대구광역시교육청 학생저자 출판지원으로 선정되어 ‘강낭콩 꼬투리가 생겼어요’ 외 10권의 학생저자 책을 발간하다.

▪2016년 가을부터 맨발걷기와 놀이를 통한 생태, 건강 교육을 시작하고 현 대한민국맨발학교 연수원장으로 활동하다.

▪2017년부터 대구독서인문교육지원단 활동을 시작하여, 책쓰기, 학급경영 관련 교사 연수 강의를 이어오다.

▪2019. 첫 번째 책 ‘최순나교단일기,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를 출간하다.

▪2019년부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원 저자 출판지원으로 선정되어 ‘시와 그림책 수업’ 외 4권의 교원저자책을 출간하다.

▪2022년 학생저자 책으로 tvn유퀴즈 153회에 출연 후 EBS 출판사에서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 책을 출간하다.

▪2022년부터 학부모를 위한 책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의 저자로 ‘유초이음교육, 맨발생태교육, 책쓰기, 독서교육’ 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학부모교육 강사로 활동을 시작하다.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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