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후 민속놀이 중에 연날리기가 있다. 연날리기는 주로 섣달그믐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한다. 동네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연 만들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탄력이 좋은 대쪽과 창호지로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을 만들었다.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들판, 뒷산, 신작로변, 강둑에서 연을 날렸다. 바람이 별로 없는 날은 달리면서 연을 띄워야 하므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연만 보고 뛰다가 논둑 아래로 떨어지거나 도랑에 빠지기도 했다. 실이 끊어져 날아간 연을 찾는다고 남의 집 담장을 넘다가 장독을 깼던 일도 생각난다. 악동들은 연을 일단 하늘로 올리고 나면 연이 평화롭게 날도록 그냥 두지 않았다. 얼레에 감겨 있는 실을 적당히 풀고 난 뒤에는 기술을 발휘해 상하좌우로 요동치게 했다. 연날리기의 압권은 줄 끊어먹기다. 실을 질기고 빳빳하게 하려고 풀이나 아교를 먹이기도 했지만, 연줄을 교차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집중하는 기술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나는 강둑에 앉아 홀로 연 날리는 걸 좋아했다. 바람이 센 날은 연을 너무 높이 올리지 않았다. 바람이 적당한 날은 얼레의 실을 다 풀어 연이 가물가물 보이도록 높게 띄우곤 했다. 한 시간 이상 연을 바라본 적도 많다. 나는 연날리기를 통해 감정이입을 체득한 것 같다. 오래 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하늘 높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연이 되어 들판을 날아다니거나, 멀리 앞산 꼭대기에 올라가기도 했다. 일단 연이 되고 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유년의 무료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었던가 싶다.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연날리기에서 비롯된 그 습관은 다른 대상에도 적용되었다.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강물이 되어 타는 노을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따뜻한 봄날 뒷산에 올라 한참 소나무를 바라보면 쉽게 소나무가 되어 솔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낮달과 놀 수도 있었다. 그런 습관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내가 멍하게 있으면 같이 있는 사람들이 옆을 툭 치며 무슨 생각 하느냐고 묻는다.
보름날에는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 이후에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심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액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 연휴가 시작된다. 고향 친구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날들을 회상하며 그 시절 뛰놀던 들판이나 뒷동산, 강둑에서 연을 날려보고 싶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