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덕 변호사의 시사법률 시사법률 부작위범 2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07 10:32:24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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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덕 로앤컨설팅 대표변호사 시사법률 부작위범 2
부작위범 2

지난주에 부진정(不眞正)부작위 범행을 저지른 자가 ‘대체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왜 범죄자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항의할 수는 없는가까지 이야기하였다. 오늘은 이 항의가 통하지 않는 이유, 즉 부진정부작위범이 처벌대상이 되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자. 시작은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 요건부터이다.

부진정부작위범이 성립하려면 가장 먼저 범인에게 ‘작위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신에게 작위의무가 있다는 것을 범인이 알고 있었어야 하며, 또한 당연히 그 작위의무를 다하지 않고 부작위 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위의무를 다했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

첫 번째 요건이자 가장 중요한 요건인 작위의무란 무엇일까. 이는 단어 그대로 ‘어떠한 행동을 꼭 해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그리고 이 의무는 법령이나 계약, 범인 자신의 선행(先行)행위, 그리고 사회상식에 의해서 발생한다.

법령에 의해 작위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경우의 예는 흔한데, 응급환자 등으로부터 진료 요청을 받을 경우 최선의 처치 행동을 해야 하는 의무가 의료법에 의하여 의료인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지난주에 이야기한 ‘신생아 부작위 살해’ 사건처럼, 가족들에게는 아이를 보호하고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민법에 의하여 부과되어 있다.

계약에 의하여 작위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경우의 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회사의 손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행동하여야 할 의무’를 들 수 있고, 선행행위의 경우 ‘사람을 차로 치어 다치게 한 운전자가 부상자를 구호할 의무’를 들 수 있으며, 사회상식의 경우 ‘판매자가 스스로 알고 있는 물건의 중대한 하자를 구매자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를 들 수 있다.

이렇게 작위의무가 인정되고, 그러한 작위의무가 자신에게 있었음을 범인이 알았으며, 범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었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면 나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될 경우에는 부진정부작위범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신생아 부작위 살해’ 사건의 경우, 가족들에게는 민법상 보호 부양 의무라는 작위의무가 있었고, 어른인 가족들은 당연히 상식적으로 자신들에게 신생아를 보호하고 먹여살려야 한다는 의무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집에 방치하여 아이가 사망하였고, 방치하지 않았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결국 그런 이유로 최종적인 살인죄 부진정부작위범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을 것이다. 기사들을 보니 변호인 측에서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변호한 것으로 보이나, 위의 부진정부작위범 성립 요건들이 모두 충족되어 유죄 판결이 선고된 것 같다.

이렇듯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범죄는 성립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부작위범이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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