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정은 과연 러시아를 응징할 수 있을까

[ 대구일보 ] / 기사승인 : 2024-02-04 09:42:37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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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정은 과연 러시아를 응징할 수 있을까

장동희 시사칼럼, 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장동희 시사칼럼, 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제소한 사건과 관련, 2월 2일 러시아가 ICJ의 관할권이 없다며 2022년 10월 제기한 선결적 항변(preliminary objection)을 각하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틀 후인 2022년 2월 26일 러시아를 ’제노사이드 협약 (집단살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위반으로 ICJ에 제소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ICJ가 관할권이 없다고 본안 심리에 앞서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였으나 ICJ는 이를 거부하고 심리를 계속할 것임을 결정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의 군사작전 즉각 중단을 명한 2022년 3월 16일의 ICJ 잠정조치 명령(provisional order)에 이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우선 침략행위의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고 우크라이나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결정할 본안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판결이 휴전이나 종전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침공의 불법성 여부 판단 근거이다. 우크라이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 직전 행한 연설에서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근거로, 돈바스 지역에서 제노사이드가 없으면 침공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의 근거는 제노사이드 협약이 아니라 유엔헌장 51조에 따른 자위권(self-defense)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푸틴은 침공 직전 행한 연설에서 특별군사작전이 유엔헌장 51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침공 당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공한에서도 이를 명시하였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예서 제노사이드를 범하지 않았단 사실만으로 러시아의 침공이 불법’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과연 ICJ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의 불법성 판단 근거를 무력사용을 금지한 유엔헌장 2조 4항이나 자위권을 규정한 51조, 혹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양도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안보를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두었다면 러시아 침공의 불법성은 보다 쉽게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불법성의 근거를 제노사이드 협약에 한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ICJ 규정상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유엔헌장이나 여타 국제법 위반으로 제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ICJ 규정 36조에 따른 ICJ의 강제관할권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가입한 제노사이드 협약은 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을 둘러싸고 분쟁이 생길 경우 ICJ가 강제관할권을 행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네 번째는 ICJ가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명령한다 해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이 유엔헌장 94조 2항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호소하는 것인데,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자국에 불리한 판결 집행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영국을 비롯한 32개국이 우크라이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ICJ규정 63조에 따른 소송참여 선언을 하는 등 국제여론이 러시아 제재 쪽으로 기울고, ICJ도 우크라이나의 제소에 대하여는 비교적 우호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의 불법성 여부를 제노사이드 협약 위반 여부에 한정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ICJ는 법리 구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가 어떠하던 만약 ICJ가 우크라이나의 제소를 기각 혹은 각하할 경우, ICJ가 마치 러시아의 침공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은 ICJ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가 간의 소송을 다루는 ICJ와 별도로 특정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형사법원(ICC)은 2023년 3월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ICJ 소송에서 우크라이나 측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해럴드 고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유고 내전 이후 체결된 데이턴 평화협정과 같은 합의가 만들어지더라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푸틴이나 러시아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에 정의가 뿌리내리길 기원한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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