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 베이비박스에 울린 건 캐럴 아닌 '엘리제를 위하여'

[ 라온신문 ] / 기사승인 : 2026-01-04 08:55:5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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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4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는 '엘리제를 위하여'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혹여 알림을 놓칠까, 캐럴조차 틀지 않고 근무하던 상담사는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매서운 날씨에 언덕길을 올랐을 산모의 두 손을 부여잡은 상담사는 "아이를 어떻게든 지켜줘서 고맙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함께 근무하던 보육사는 그사이 박스 안에 담긴 배냇저고리 차림의 아기 상태를 확인했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작은 생명이었다.



상담사의 긴 설득 끝에 산모는 결국 아기를 직접 키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출근해야 한다'며 잠시 아기를 부탁한 산모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양육할 수 없는 신생아를 두고 갈 수 있는 시설인 이곳 베이비박스에는 지난해 총 26명의 새 생명이 맡겨졌다. 2011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잦은 언론 보도와 까다로워진 입양 절차 덕에 2018년 217명까지 몰렸지만, 저출산 추세와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감소하고 있다. 2024년 7월부터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는 보호 출산제도가 시행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보호 출산을 한 뒤 결국 직접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산모나 불법체류자 산모 등은 여전히 베이비박스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베이비박스가 추구하는 역할도 임시 보호에서 산모와의 공동 양육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류모(45)씨는 지난달 31일 "베이비박스에 오는 엄마들은 아기 아빠와 연락이 두절되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혼자가 아니라 시설이 함께 키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모에게 분유와 기저귀 등을 제공하고, 의료·주거 서비스도 안내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시차가 있는 만큼, 현실적 어려움을 즉각적으로 덜어주며 '키울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 것이다. 그 덕에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데리고 온 26명 중 14명(53.8%)이 직접 양육을 결정했다. 2024년(28.8%)의 2배 수준이다.



내년부터는 베이비박스를 거쳐 보육 시설에 간 아이들에게 결연금과 선물을 지원하는 '지켜지는 아이들' 사업도 체계화할 예정이다. 이들이 공부하고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공간 '드림센터' 운영도 계획 중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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