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불법 하도급 합동 점검을 함께 서울 용산구 소재 청년주택 공사장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국토부제공]](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09/3383121_3511176_3319.png)
(과천=국제뉴스) 손병욱 기자 = 건설 현장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의 배경에는 경기 침체와 불법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장관들을 앞세운 합동 점검을 지난 18일, 불법 하도급 합동 점검을 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크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국 건설산업은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빠르게 고갈됐다.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은 안전관리비였다.
종합·전문 건설업 간 상호시장 진출 허용 제도는 본래 경쟁 활성화를 위해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불법 하도급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원도급사는 책임을 피한 채 공정을 잘게 쪼개 내리 도급을 주고, 그 과정에서 비용은 계속 깎인다. 줄어든 비용의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과 재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건설현장의 안전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사고는 반복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원도급사가 이익을 챙기고, 하청과 재하청으로 내려갈수록 남는 게 없어 결국 안전비부터 줄인다”며, “현장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안전시설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하청 구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원도급사가 공사 대금의 마지노선을 정해 놓고 시공을 이어가다 보니, 더 싼 노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며, “숙련공은 값싼 임금으로는 애초에 구할 수 없고, 결국 현장은 경험 부족 인력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과 국토교통부 김윤덕 장관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청년주택 신축 현장을 찾았다. 시공사는 효성중공업으로 공사비만 1,652억 원에 달하는 대형 현장이다. 두 장관은 직접 리프트를 타고 최고층 작업장까지 올라가 △공종별 하도급 현황, △근로자 채용 경로, △임금 지급 여부, △위험공정 안전조치 준수 여부 등을 점검했다.
현장에서는 ▲ 계단 난간 미설치, ▲ 자재 인양구 덮개 미흡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김영훈 장관은 “불법 하도급은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직결된다”며 즉각적인 시정을 지시했고, 김윤덕 장관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전’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며 원도급사의 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장관들이 현장을 찾고, 위반 사례를 지적하고, 시정을 지시하는 그림은 늘 되풀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하도급은 사라지지 않았고 안전사고는 계속됐다.
노동계는 이번 점검 역시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한 노조 관계자는 “하도급 구조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현장에 내려가 사진 몇 장 찍고 오는 게 무슨 의미냐”며, “매번 똑같은 뒷북 단속 쇼만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 아파트 신축 현장은 공사비를 맞추기 위해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면서 불법 하도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진=국제뉴스DB]](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09/3383121_3511183_3912.png)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임금체불 집중 청산 지도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체불 건설노동자에게는 대지급금을 신속히 지급하고, 사업주에게는 체불 청산 융자제도를 안내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 역시 매년 반복돼 왔음에도 임금체불 문제는 명절 때마다 빠짐없이 되살아났다.
전문가들은 “임금체불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부산물”이라며, “체불이 터질 때마다 한시적 대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문제는 원도급사의 책임 회피다. 공사를 수주한 원도급사가 하도급 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안전비용을 우선 배정하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단속을 강화해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건설안전 기술사 A씨는 “장관들이 현장을 찾는 건 메시지 전달 차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제도 개혁 없이는 현장은 그대로”라며, “불법 하도급 구조를 깨뜨리고 원도급의 안전 책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건설산업은 지금 ‘안전보다 비용’이라는 공식에 갇혀 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줄줄이 잘려나간 안전관리비, 그 빈자리를 노동자들의 목숨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장관들이 나서서 점검을 하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구조적 개혁 없이는 불법 하도급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단속을 넘어, 원도급 중심의 책임체계 강화와 불법 하도급 차단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또 다른 건설현장 안전사고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