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여행' 대전편, 오징어칼국수·대청댐·김호연재 소개

[ 국제뉴스 ] / 기사승인 : 2024-10-06 20:29:5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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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꿈돌이 / KBS 제공
'아주 사적인 여행' 꿈돌이 / KBS 제공

6일 방송되는 KBS '아주 사적인 여행'에서는 대전을 찾는다.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태동한 후 약 120년간 파란만장한 개척의 역사를 쓰며, 교통과 산업 그리고 과학기술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지극히 史사적인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번 대전 여행은 MC 박미선, 심용환과 KBS1 새 일일드라마 <결혼하자 맹꽁아!>의 주인공인 배우 박하나가 함께 한다.

▶대전의 기원 ‘대전역’

경부선, 충북선, 그리고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는 대한민국 철도교통의 중심, 대전역. 잠시 정차하는 동안 뜨끈한 가락국수를 즐기던 옛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있다. 1905년, 일제의 식민지 자원 수탈과 대륙 침략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넓은 밭’이라는 옛 지명처럼 조용한 시골 마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이라는 도시가 시작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교통의 요지로 성장하며, 인구 144만 명에 달하는 충청권의 최대 도시인 대전 역사(歷史)의 출발점이 됐다. 최근에는 전역한 군인들이 다녀가는 필수 코스로도 유명하다는데. 대전역에 숨겨진 사(使)적인 이야기를 살펴본다.

▶ 대전 근현대사의 상징 ‘옛 충남도청사’

대전역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 끝에는 옛 충남도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932년에 지어진 국가등록 문화재 18호로, 원형이 잘 보존된 몇 안 되는 근대 관청 건물 중 하나다. 대전역과 마주 보이는 위치에 T자형 도로를 만들어, 대전역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가도록 설계된 옛 충남도청사. 이는 식민 통치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일제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6·25전쟁 중에는 임시 중앙청으로, 그 이후에는 충남 행정의 중심으로, 근현대사의 질곡을 오롯이 품고 있는 옛 충남도청사를 돌아본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제동 ‘철도 관사촌’

대전역 동광장 건너편, 대전의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제동 철사 관사촌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던 곳이었지만, 경부선 부설로 매립되고,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 철도 종사자들이 대거 들어와 관사촌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인 철도 종사자들이 살며, 대전 3대 부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초 100여 채 이르던 관사 건물은 현재 40여 채가 남아 있고, 레트로 바람을 타고 식당이나 카페로 개조돼 대전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1963년부터 이곳에서 이발소를 운영해 온 87세 현역 이발소 사장님을 만나 소제동 관사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 집 건너 후루룩~ 대전 시민의 소울 푸드, 칼국수

대전은 칼국수에 진심인 '칼국수의 도시'로 유명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전에는 칼국숫집이 무려 700여 곳이 넘으며, 대전 사람들이 가장 추천하는 음식 역시 칼국수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철도 물류의 거점이었던 대전이 구호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하면서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되었고, 자연스럽게 칼국수를 즐겨 먹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전쟁이 끝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부족한 쌀 생산량을 보완하기 위해 밀가루와 보리 소비를 촉진했던 '혼분식 장려 운동'도 대전의 칼국수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60년 전통을 지닌 대전 칼국수의 원조 격인 오징어 칼국수 집에서 얼큰하고 칼칼한 칼국수를 맛보며 대전 사람들의 ‘밀 부심’ 역사를 들어본다.

▶여풍당당 조선의 여성 시인 ‘김호연재’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에게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조선 17세기의 여성 시인이 있다. 바로 ‘호연재 김씨’다. 그녀는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인 송요화와 혼인했다. 이 혼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두 세도가인 안동 김씨와 은진 송씨 가문의 결합이었으며, 노론 세가의 확장과 결속을 위한 것이었다. 김호연재는 총 240여 수의 시를 남겼는데, 그 속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에서 여성이자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굳건하게 살아낸 그녀의 숨결이 담겨 있다. 이름 대신 호(號)로만 알려졌지만,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주체적인 여성이었던 김호연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송순주를 음미하며 그녀의 삶을 되짚어본다.

▶허허벌판에서 과학 기술의 메카로 ‘대덕연구개발특구’

누구나 추억 하나쯤은 있을 법한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개발도상국이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경제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앞당긴 국제 행사였다. 대전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 발판에는 1970년대 초반에 개발된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다.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 정책이 추진되면서 허허벌판이던 대덕에 산업기지개발공사(現 한국수자원공사) 등의 참여로 전문연구단지가 조성됐고, 현재는 명실상부한 과학기술의 메카로 성장하며 대전을 ‘과학 수도’로 견인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가한 시카고 박람회 이야기부터 대전이 '과학 수도'로 자리 잡기까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금강 홍수 관리의 최전선 ‘대청댐’

댐이 만들어질 당시, 대덕군과 청원군 사이에 위치하여 ‘대청’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청댐. 1960년대 금강 수계에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피해,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을 위해 댐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에 한국수자원공사가 1975년에 공사에 착수, 1980년 12월에 완공하며 우리나라 네 번째 다목적댐을 건설하였다. 대청댐은 연간 13억 톤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12개 지자체, 400만 명의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 있었던 집중호우에도 수문 방류 없이 한계상황까지 버티며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1차 방어선 역할을 해냈다. 넓게 펼쳐진 대청호를 바라보며 수자원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고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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