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일보]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과 현실 투자 흐름 사이의 간극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시민사회는 한국전력·발전 공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구조가 석탄발전 의존을 고착화한다며, 열적·명목 기준처럼 느슨한 제한이 아니라 물질적 감축에 해당하는 실질 기준으로 투자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중단을 요구하는 국내외 시민들의 목소리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 취임 직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시민사회 연대체 국민연금기후행동과 글로벌 환경단체 에코는 17일 국민연금공단에 석탄 투자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 약 5만3000명의 서명을 공식 전달했다.
이번 서명은 9월 10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에코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됐으며, 총 119개국 5만2951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시민들은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원칙에 따라 석탄 투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서명 전달은 지난 15일 13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 자산을 운용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김성주 이사장이 취임한 직후 이뤄져 주목된다. 시민사회는 김성주 신임 이사장이 과거 이사장 재임 시절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활동 당시 국민연금의 기후 리스크 관리와 탈석탄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이번 서명을 글로벌 시민사회의 분명한 요구이자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신호로 평가했다.

이번 캠페인은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축소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석탄 투자 지속의 핵심 요인으로 한국전력과 발전 공기업에 대한 투자 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해외 참여자들은 한국전력이 국내외에서 석탄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이 그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기후행동은 이번 서명 전달이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새 이사장 체제에서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체계가 실질적으로 개편되는지를 감시하는 지속적인 캠페인의 일부라고 밝혔다.
글로벌 서명 캠페인을 운영한 에코는 해외 서명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한국전력의 석탄발전 의존도가 국내외 기후위기 대응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코는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국제적 요구가 분명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에코의 글로벌 기후금융 캠페인 담당자인 아펙시타 바르슈니는 한국전력이 국내외에서 석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기후위기의 핵심 원인이라며, 국민연금의 자금 지원이 이러한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119개국 5만여 명의 시민이 국민연금이 석탄발전의 조력자가 아니라 기후 리더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기후행동 연대 단체인 빅웨이브의 김민 대표는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로 단기 수익을 올릴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기후위기 피해 비용이 미래 세대에 전가돼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공적 연기금으로서 수익률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 탈석탄 목표 연도를 명확히 제시하고,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민연금의 투자 흐름은 시민사회 요구와 엇갈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실이 확보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한국전력과 5개 발전 공기업에 대한 주식과 채권 투자 규모는 지난해 18조3100억원에서 올해 5월 기준 17조5500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급증한 한국전력 채권 발행에 따라 국민연금의 채권 투자액은 여전히 전체 채권 발행량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1년 탈석탄을 선언하고, 지난해 석탄 기업 투자 제한 전략을 도입했다. 하지만 해당 전략은 석탄 매출 비중이 50퍼센트 이상인 기업만을 제한 대상으로 삼고, 국내 적용을 5년 유예하는 등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비공개 기업 대화 기간도 5년으로 설정돼 있어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투자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자산은 2030년까지 제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외 시민 5만여 명의 서명이 전달되며, 김성주 신임 이사장은 기존 전략을 유지할지,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책임투자 체계로 전면 재정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국민연금기후행동 연대 단체인 기후솔루션의 고동현 기후금융팀장은 한국 정부가 탈석탄 동맹에 가입하고 2040년 탈석탄을 추진하는 만큼 국민연금도 한국전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석탄 투자 제한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주주 관여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