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백률사, 박물관, 진흥왕릉, 법흥왕릉 등 답사||진흥왕, 법흥왕, 이차돈, 거칠부

▲ ‘신라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행단’이 법흥왕릉 앞에서 법흥왕의 흔적 및 공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신라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행단’이 법흥왕릉 앞에서 법흥왕의 흔적 및 공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천년 고도 경주에서 신라 사람들의 삶을 통해 문화·역사를 이해하는 역사문화탐방 행사가 열렸다.

대구일보는 역사문화에 관심 있는 경주시민 및 포항, 대구, 울산, 부산 등지에서 신청을 받아 ‘신라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행단’(이하 신사단)을 꾸리고, 21일 올해 첫 역사기행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신사단은 법흥왕, 이차돈, 이사부, 진흥왕, 미실, 거칠부 등 신라 중흥기에 기여했던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먼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에 불교를 공인시켜 국가이념과 왕권확립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차돈의 순교를 기록한 이차돈순수비를 둘러봤다. 화랑들의 맹세가 기록된 임신서기석, 진흥왕순수비, 명활산성작성비 등 법흥왕과 진흥왕 당시의 문화유적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법흥왕 당시 귀족들 앞에서 처형된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곳에 지어진 자추사와 신라시대 불적이 남아 있는 소금강산 백률사를 답사하며 신라의 불교 발전과 권력의 흐름에 대해 토론했다.

작약꽃이 만발한 서악동 삼층석탑을 지나 진흥왕릉을 살펴보며 진흥왕의 업적과 43세의 젊은 나이에 흥륜사 승려로 생을 마감한 정복군주의 생에 대한 기록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 백률사 입구 계단에서 ‘신라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행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백률사 입구 계단에서 ‘신라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행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진흥왕의 동생 세종과 혼인하고도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의 후궁으로 지냈으며, 풍월주 설다함과 설원랑, 미생랑, 그리고 진흥왕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동륜과도 정을 통하며 신라의 흥망에 영향을 미친 미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증왕 때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맹활약을 펼쳤던 이사부 장군의 흔적도 더듬었다. 사자의 목인형으로 당시 우산국인 울릉도를 복속하고, 왕에게 건의해 거칠부를 통해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는 등 거칠 것 없던 이사부의 일생을 현 세대의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날 신사단은 “진흥왕과 미실이 후계구도를 두고 대립한 것이 분명하며, 이 때문에 진흥왕이 유폐되거나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며 “진지왕 당시 거칠부가 상대등이었던 점으로 미뤄 진지왕을 옹립할 때 거칠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신사단은 다음달부터 매주 세 번째 토요일 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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